30대까지만 해도 직모였던 남편의 머리카락은 40을 지나 50을 넘기며 반곱슬이 되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세월 따라 힘을 잃는 걸까요? 장교스타일 짧은 컷을 하면 삐죽삐죽 각 잡힌 헤어스타일이 멋스럽던 때가 있었는데 요즈음엔 짧은 컷을 하면 힘없이 내려앉아 머리숱이 반토막 난 듯 느껴집니다. 게다가 구레나룻 위치에 유독 흰머리가 집중적으로 올라와 안쓰럽기까지 하니 세월이 참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남편도 희끗희끗 올라온 흰머리가 거슬리는지,
"염색할까? 염색을 미용실에서 하면 얼마야?"
"미용실마다 다른데... 비싼 곳도 있고, 염색만 하는 곳은 좀 저렴하기도 하고..."
"당신이 해줄래?"
라며 은근슬쩍 한 마디 던져봅니다.
"좋아. 그게 뭐라고... 해주지 뭐..."
로켓배송으로 주문했더니 다음날 바로 도착했습니다.
뒷머리부터 두피에서 2cm 정도 떨어뜨려 모발 끝부터 염색약을 꼼꼼히 바른 후, 다시 띄워놓은 두피 쪽을 발라줍니다. 체온 때문에 두피부터 바르기 시작하면 피부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의 색이 다르게 염색될 수 있으니까요.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염색약을 바르고, 랩핑을 한 후 30분이 지난 후 샴푸를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갈색으로 예쁘게 염색이 되었네요. 일주일쯤 지난 후 남편은,
"파마도 좀 해볼까?"
"왜?"
"앞머리 없이 넘기고 다니려고..."
"미용실 예약 해 줄까?"
"예약을 해야 해?"
"그럼?"
"파마하는데 얼마야?"
"음... 기본파마가 한 10만 원 정도?"
"그럼, 내가 15만 원 줄 테니 당신이 집에서 해줄래?"
"오~ 좋아!"
파마약도 바로 주문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걸려?"
"로뜨 말고, 3~40분 기다렸다가 중화 10분 해야 하니까 한 시간 정도?"
코로나 전에 동네 문화센터에서 셀프 미용을 배웠습니다. 이후 4년 정도 팬트리에 처박혀있던 도구를 주섬주섬 꺼내봅니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로뜨를 마는데 고무줄은 튕기고 펌지는 떨어지고, 말아가는 중간에 머리카락은 빠지고 다시 말고를 반복하다 보니 로뜨말기만 30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잘 기다려주는 남편은 참 착한 손님입니다.
30분쯤 지나 펌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고 중화제를 바른다는 것이 '아뿔싸' 로뜨를 절반이나 풀어버리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여보, 미안... 중화제를 바른다는 게 아무 생각 없이 로뜨를 풀어버렸네? 다시 말아야 해..."
로뜨를 다시 말고, 중화제를 바르고, 기다리고, 풀고, 머리 감기까지 끝내고 나니 안심입니다. 이제 두구두구 둥~ 결과물을 볼 시간입니다. 머리를 감고 나온 남편이 거울을 보며,
"오~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야."
파마 전, 파마 후
분명 전문가의 손길보다 부족했을 텐데도 맘에 든다고 말해주니 자존감이 쑥 올라갑니다.
"내가 못하는 것 빼고는 다 잘해."
"그렇지. 우리 마누라는 다 잘하지."
로뜨와 펌지, 고무줄을 씻고, 어질러진 탁자를 정리하는 게 좀 귀찮았지만, 오늘 무언가 한 가지 성과를 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염색약 5천 원, 파마약 8천 원, 총 만 삼천 원으로 남편의 헤어 변신은 대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