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해지니 곳곳마다 정리할 곳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정리랑 날씨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가족들은 말하지만 해 본 사람만 안다는 그 정리를 2주째 하고 있어요.
오른팔 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은 후 일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일상의 생활 속에 불편함이 계속되고, 조금만 무리해도 팔꿈치에서 뜨끈뜨끈 열이 나죠. 반복된 경험에서 얻은 지혜라면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컨디션이 좋은 오전 시간,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주방 붙박이장 상부장, 내일은 하부장, 모레는 안방 드레스룸... 이렇게 한 곳씩 정리하다 보면 한 달이면 얼추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보았어요. 예상대로 한 곳씩 말씀해지는 경험을 매일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동글이예요...
동글이가 등교하고 나면 뱀 허물 벗듯 늘어져있는 동글이의 잠옷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거든요.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네요. 성질 급한 사람은 손 발이 고생한다나요? 결국 보다 보다 못한 제가 움직여봅니다. 방방마다 다니며 빨래를 수거해 세탁기에 넣고, 먼지포를 끌고 다니며 간밤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을 정리해요. 개수대에는 가족들이 먹고 내놓은 그릇들이 한가득이니 주섬주섬 설거지도 하죠. 한바탕 쓰나미가 스치고 지나가야 제가 오롯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와요.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모닝빵 하나를 식탁에 놓고 컴퓨터를 열었어요. 예쁜 컵과 단정하게 놓인 디저트 접시? 이런 건 없어요. 컵 하나도 나를 위해 설거지거리가 되는 것은 사절이죠. 오늘 종일 손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는 빨간색 텀블러 당첨이에요. 이것에 커피, 생수, 가끔 딸기에이드를 넣어서 마실 거고, 밤이 되면 애벌 설거지를 해서 자리끼도 담을 거예요. 온종일 텀블러 하나면 OK죠. 자신을 위해 너무 야박한 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효율성을 선택하게 되는 건, 컴 하나도 팔을 움직이게 하지 않으려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애써 변명을 해 봅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보니 동글이 녀석 아주 괘씸하네요? 얼마 전에는,
"동글아, 엄마가 옷을 벗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세탁바구니에 넣으라고 했지."
"그런데 아침에 그렇게 했어?"
"아니?"
"어떻게 놓았는지는 알아?"
"알아."
"알아??"
"응."
"그런데 왜 안 했어?"
"음... 그냥..."
"그냥이라고? 이노무자슥~"
이라고 했더니 동글이의 말,
"엄마, 내가 이노무자슥~이면 엄마가 '이놈'이 되는 거네?"
"헐..."
그래서 잠깐 생각해 봤더니 결국 이노무자슥~이라는 말은 나를 욕하는 것 같은 거예요...
"좋아. 그럼... 앞으로, '양반의 자슥'이나 '이... 왕의 자슥 같은 녀석'으로 말해야겠다..."
"엄마.... ㅎㅎㅎㅎㅎ 그게 뭐야."
"왜... 이 왕의 자슥 같은 녀석아... ㅋㅋㅋㅋㅋ"
동글이는 ing 상태입니다.
등교 전 옷가지는 여전히 뱀허물 벗듯 벗겨져있고, 하교하면서 신발장에 툭 던져진 실내화가방과 거실 중간에 떡 허니 던져놓은 채 아침까지 화석이 되어버리는 책가방.
학교에서 숙제를 내어주지 않는 거겠죠? 숙제가 있다면 가방을 한 번이라도 열어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