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넘은 아이' 전권을 필사하고, 필사한 분량만큼 개인 감상을 쓰라는 것이 숙제였다. 감상은 고사하고 필사하는데만 삼일이 걸렸다. 동글이의 쓰기 속도가 느린 탓도 있지만 필사의 맛을 모르는 동글이가 그저 옮겨 쓰기에 불과한 단순 노동을 무지무지 싫어한다는 게 더 문제였다. 서너 줄 쓰고 놀고, 다시 와서 서너 줄 쓰고 놀고를 반복하며 주말을 보냈다.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하기 싫은 마음과 놀고 싶은 마음이 해야 한다는 의무를 넘어섰다. 아래층 동생집에 놀다 와도 되냐는 질문에 '숙제를 다 할 자신'이 있으면 놀아도 좋다고 했었다. 결국 어제 늦은 저녁부터 부랴부랴 숙제를 하느라 동글이의 팔뚝과 손가락은 몸살을 앓았다.
"엄마, 잠 안 오는 약은 없어?"
"잠 안 오는 약이 왜 필요해?"
"아니, 2/3 밖에 못했는데 너무 졸려."
"그런 약은 없어. 있다 해도 줄 수 없고... 엄마가 금요일 오후부터 숙제 먼저 해 놓으라고 했잖아. 네가 미뤘으니 졸려도 꾹 참고 해야지."
책상 앞에 앉은 동글이가 너무 조용하기에 다가가 보니 이미 잠이 들었다.
동글이도 맘이 불편했는지 깨우지도 않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났다. 그런데, 어랏! TV 앞이다.
"동글아, 숙제는 다했니?"
"쓰는 건 다 했는데 느낌이 생각이 안 나."
"저런... 쥐어짜 내봐..."
마지못해 TV를 끄고 책상 앞에 앉은 동글이를 뒤로한 후 아침 준비를 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듯했는데 동글이는 다시 TV 앞이다.
"동글아, 숙제 다 했니?"
"응."
"생각이 안 난다더니 벌써 다 했어?"
"그냥 대충 했어."
"숙제를 대충 하면 어떡해~?"
"괜찮아. 그냥 갈래."
차마 독서록을 읽어볼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잔소리 폭탄을 날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책가방을 싸야지."
"이따 할게."
입만 나불나불, 시선은 TV로 간 동글이를 보며 주섬주섬 책가방을 대신 챙겼다. 저도 새벽부터 일어나 숙제하느라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서비스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배움 공책'
"동글아, 배움 공책도 가방에 넣어야 해?"
"아니? 그거 다 써서 새 공책 넣어뒀어."
학교에서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후루룩 펼치는데 보건 수업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성교육 아기를 만드는 법 남자와 여자가 서로 관계를 하면 된다.
갑자기 호기심 발동.
"동글아, 성교육받았네? 아기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웠어?"
"응"
"남자와 여자가 서로 관계를 하면 된다고 쓰여 있는데 어떤 관계를 하면 되는 건지 알아?"
"몰라. 칠판에 써 주신 거 베껴 쓴 거야."
이런...
엄마가 성교육 강사인데 아들은 아기 만드는 법을 모른단다. 뒷면도 읽어보니 사춘기 증후(월경, 발기)에 관한 특징이 적혀있었다. 되물어보니 역시 이 부분도 동글이는 잘 몰랐다. 순간 반성이 되었다. 수업 준비를 한다며 책상 앞에 매일 앉아있지만, 수많은 수업 자료를 갖고도 동글이와는 나눔이 없었던 것이다. 1:1로 수업을 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니, 또래 친구들 몇 명을 초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