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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Oct 11. 2023

니가 나보다 낫다!

더위가 가고 찬바람이 불어오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식탁에 앉아 멍하니 먼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뿌옇게 흐려진 창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창문이나 닦아볼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던 건, 사서 고생의 시작이었음을 닦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말이죠.


2년 전 아래층 동생과 윈도우봇 광고를 보면서 둘이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 사서 1년에 한두 번씩 번갈아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2년 동안 한 번도 사용했던 적이 없던 윈도우봇입니다. 


마른 창을 한 두 번 닦고, 물에 적셔 한 두 번 닦아야 한다며 전해주고 간 윈도우봇을 창문에 거치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혼자서 잘 닦아줍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마치 애벌레처럼 꿈질꿈질 움직이며 창을 닦는데 거참 신묘한 녀석입니다. 딱, 닦아야 할 만큼만 이동하며 닦아내려가는 윈도우봇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창 멍하게 만드는 윈도우봇과 장장 8시간씩 연 이틀을 닦았습니다.  


꿈질꿈질 창멍하게 만드는 윈도우봇


창문이 하나, 둘씩 닦아질 때마다 마음까지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 맑아지니 매일 보던 창밖 풍경도 달리 보였습니다. 최근 이러저러한 일들로도 어수선했던 마음까지 다잡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뭘 하나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다며 가족들이 한 마디씩 던지며 지나가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나눠서 하지 그러다 몸살 나겠다는 걱정의 말을 듣고도 다신 안 닦을 것처럼 창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다 닦고 나서 정말 몸살이 와 며칠 고생했지만 환해진 창들을 보니 뿌듯하기만 합니다. 


창을 열지 않고도 찍을 수 있는 풍경


찬바람이 불고, 환기시킬 때 말고는 겨우 내 굳게 닫힐 창.

굳게 닫힐 것이 그저 창뿐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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