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맞는 것도 아니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남편이 하는 말입니다.
'요즘 누가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전이나 잡채, 고기... 이런 건 못 먹던 시절이나 귀했던 거지.'
누가 들으면 며느린 줄 알겠습니다. 덕분에 몇 년 전부터 명절음식은 만들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것 한, 두 가지 정도 바로바로 만들어먹거나, 온 가족이 좋아하고 잘 먹는 메뉴로 식당을 예약해서 밥을 먹기도 하고, 며칠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음식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명절에 음식 하는 걸 왜 이리 싫어해?"
"당신이 몰라서 그래. 남편들은 뭐 마음이 편한 줄 알아? 아무리 곁에서 도와준다 해도 아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눈치 보고 그런 거지. 남편들도 힘들어..."
명절이라고 아내들만 주방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전 부치는 것도, 채소를 다듬는 것도 남편들이 잘 도와주고, 식후 설거지는 장성한 조카들이 거들어줍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이보다 더 조화로운 풍경이 있을까 싶지만 그조차도 남편은 싫은 모양입니다.
"난, 가족들이 모여서 아무도 일을 안 했으면 좋겠어.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놀고 이야기하고 그러면 좀 좋아? 밖에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커피도 마시면 되지, 꼭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해야 해? 정 집에 오고 싶으면 집에서는 과일이나 좀 먹고, 애들은 피자 좀 시켜주고... 그게 좋아."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진다죠? 정말 몇 년 전부터 명절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밥은 근사하게(?) 사 먹고, 집에서는 윷놀이, 카드게임등을 하고,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으며 어느 누구도 불편한 마음 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투덜이 남편을 둔 덕분에 세상 어디에도 없을 복 많은 며느리 노릇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2주 전부터 명절 선물을 준비하러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우편이 몰리지 않는 시기를 찾느라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명절 전부터 잘 받았다는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 남편은 명절을 앞두고 분주합니다. 연휴 전 처리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은 하나라며 동분서주하는 남편을 보며 미안한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입니다.
저녁 미팅이 있다며 나선 남편에게 톡이 들어옵니다.
낮에도 짬뽕밥을 먹었는데 밤에도 짬뽕밥이라며 인증숏을 보낸 것입니다. 바닥에 신문지를 펼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짬뽕밥을 먹고 있을 남편의 모습이 그려지니 웃음이 피식 나옵니다. 안쓰럽고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느냐며 남편은 투덜대겠지만 양반다리를 못하는 남편이 바닥에 펼쳐진 밥을 먹으려면 어떤 자세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