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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

잊히던 날에 웃음을 선물하다

by 로운

남편의 생일은 음력 8월 17일이다.
추석 다다음 날이라 먹거리도 풍성하고 손님도 많으니, 어릴 적엔 용돈도 제법 챙겼겠거니 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단다. 하필 아버지 생신과 같은 날이라 막내의 생일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히려 찬밥 신세였다고 했다. 명절엔 명절이라 바쁘고, 생일엔 온통 아버님께 집중되어 막내의 생일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곁들여 축하 한 마디쯤 건넬 법도 한데, 오히려 묻히고 잊히는 듯해 서러웠다고 했다.


결혼 후 처음 맞은 명절 풍경은 남편의 말 그대로였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맞은 추석, 이번엔 막내 생일에 ‘축하’ 한 마디쯤 건네겠지 싶었다. 그러나 사십 평생 기억 속에 없던 그날은 아버님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묻히고 잊혔다.


어버이날이 생일인 나도 사정은 비슷하다.
되레 생일날엔 어른들 챙기느라 분주했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밥 한번 먹으려 해도 전날이나 다음날, 혹은 생일 주말에야 가능했다. 정작 생일 당일은 늘 혼자였다. 어쩌면 그래서 남편이 느끼는 허전함을 더 잘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생일마다 나 자신에게 선물을 했다.
사고 싶던 물건을 하나씩 사주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나름의 위안이었고, 필요한 걸 채우는 기쁨도 있었다. 그렇게 쉰 해를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는 웬일인지,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해주고 싶어졌다.
경기가 좋지 않아 사무실 일거리도 줄고, 차를 바꿔야 하는데 여력도 없다고 투덜대는 남편에게 차를 선물할 순 없지만, 함박웃음 하나쯤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선물을 고르려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골프를 좋아하니 필드 이용권을 생각하다가 문득 ‘돈다발 케이크’가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 공임이 제법이었다. 케이크 단 수와 크기를 고르면 예산에 맞춰 만들어주는데, 인건비만 5~6만 원 정도였다. 주문을 할지 직접 만들지 잠시 고민하다가 “만들기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지” 하는 마음으로 재료를 주문했다.


처음엔 만 원짜리로 케이크 둘레를 꾸밀까 하다가 천 원짜리로 바꾸었다.
만 원짜리는 케이크 속에 숨겨 장식했다. 결과물은 나름 근사했다.


깜짝 선물을 준비하느라 딸아이 방에 케이크를 숨겨두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월패드의 알림이 평소보다 반가웠다.


딸아이 방에서 촛불을 켠 케이크를 들고 나오자 남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반가움보단 약간의 실망이 섞인 표정이었다.

“이게 뭐야~”
“뭐긴, 생일 케이 크지.”
“만들었어?”

“그럼, 내가 만들었지.”
“근데…”
“가운데 리본을 잡아당겨봐.”
“이거?”

별 기대 없이 리본을 당기던 남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만 원짜리 지폐가 줄줄이 이어져 나오자 함박웃음이 터졌다.

“이게 다 얼마야? 이런 건 또 언제 생각했어? 오~ 좋은데!”

지폐를 목도리처럼 칭칭 감더니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천 원짜리로 만든 케이크인 줄 알았지?”
“응. 좋아해야 할지, 좀 아쉬워해야 할지... 반응이 좀 느렸지?”
“ㅋㅋㅋㅋㅋ”


아이들과 한바탕 웃었다. 잊히지 않을 추억 한 점이 그날의 생일에 얹혔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지. 반전 매력 있잖아.”
“이거 꽤 들었겠는걸? 내 생에 이렇게 비싼 케이크는 처음이네.”

남편은 생각보다 훨씬 좋아했다.


주는 마음도 좋았고, 받는 웃음은 더 좋았다.





덧. 생각보다 만들기 쉽지 않았고, 공임을 왜 그만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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