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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차려주는 밥상

오랜만의 데이트

by 로운


남편과 단둘이 데이트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한 2년쯤 됐으려나.
따로 시간을 내어 나들이를 하기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던 것도 같고,
마음이 어수선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서로 소원해진 탓도 있는 것 같다.


“당신, 31일에 약속 있어?”


전에는 없던 말이었다. 예전엔 늘 남편의 스케줄이 먼저였다.
그가 “31일에 나랑 OO에 가자.”라고 하면, 있던 약속도 미루고 무조건 남편에게 맞췄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달라졌다. 내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아이 입시가 끝난 뒤 내 일을 찾아가며 바빠지자,
남편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 내 일정을 먼저 물었다.
그가 변한 행동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31일엔 수업이 없네요. 어디 가요?”
남편의 설명이 이어졌고, 그렇게 2주 뒤 약속이 잡혔다.


약속 전날, 남편이 또 물었다.
“내일 약속 있어?”


이미 다이어리에 ‘31일 남편과 약속’이라고 적어두었는데도, 그는 다시 확인했다.
“당신과 약속 있잖아. 별표까지 쳐뒀는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오랜만에 본 미소였다.


“난 또 다른 스케줄 있나 해서.”
“2주 전에 미리 잡은 약속인데, 다른 약속을 넣으면 안 되지.”
“내일 점심은 뭐 먹을까?”
“아웃백!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요.”


연애할 땐 자주 갔던 곳이다. 큰아이 낳고도 한참을 다녔었다.
늦둥이가 태어난 후 남편은 보다 실속 있는 장소에서의 외식을 선호하게 됐다.


“그래, 가자. 그 뭣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향했다.
남편이 먼저 들어가고, 나는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식당으로 갔다.
이미 주문은 끝난 상태였다. 남편이 주문했다면, 직원의 추천이 강하게 작용했을 터였다.
‘제일 맛있는 걸로요’ 혹은 ‘가장 인기 많은 걸로요’ 같은 말이 오갔을 것이다.


역시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뭐라고 하면서 주문했어요? 내가 주문했으면 런치메뉴에서 골랐을 텐데.”
“옆에서 메뉴 설명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제일 맛있는 걸로 달랬지.”

덕분에 정말 거하게 먹었다.

두 사람 식사 치고는 꽤 비쌌지만, 오랜만의 데이트였고, 비싼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주는 못 오겠지만, 오늘만큼은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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