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진 옷에서 다시 피어난 손끝의 기쁨 –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 옷 정리.
가족들이 잘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분류하며, 천사 가게에 기부할 옷과 헌 옷 수거함에 넣을 옷을 나누어 담았다. 그러다 문득, 옷에 달린 지퍼나 단추를 따로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아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나둘 떼어내다 보니, 어느새 가방 하나쯤 만들어볼까 싶어졌다.
팬트리에 모셔두었던 미싱과 오버록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부자재를 꺼내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아마도 5년은 묵혀두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웠던 시절, 잠깐 쓰고는 그대로 둔 터라, ‘이게 아직도 돌아가면 기적이지’ 싶었다.
다행히, 미싱은 힘겹게나마 돌아갔다.
청바지는 이쁜 단면을 헤치지 않게 조심스레 자르고, 주머니와 벨트고리는 모양 그대로 살려 떼어냈다. 안감으로는 색이 바래 잘 입지 않던 여름 바지를 활용했다. 그렇게 가방 두 개를 뚝딱 만들어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어? 그거 내 바지...”
“바지 두 개 뜯어서 가방 세 개 만들었어.”
“바지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이상해. 별로야.”
“왜?”
“엉덩이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칭찬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엉덩이를 들고 다닌다’니… 참으로 기상천외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즐거웠다.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이번엔 조각천 상자를 꺼냈다. 10년 전쯤 퀼트에 빠져 모아둔 천들이었다. 큼직한 것들은 크기별로 가지런히 정리하고, 제 모양이 아닌 천들은 길게 혹은 네모나게 잘라 모아보았다.
이리저리 맞춰보다 보니, 버려지기엔 아까운 천들이 새 생명을 얻는 듯했다.
6×6, 4×4, 3×3 크기로 자른 조각들을 이어 붙여 60×60짜리 천 두 장을 만들었다.
안감은 또 여름 바지로. 그렇게 완성된 두 개의 쇼퍼백. 이번엔 남편의 반응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손끝에서 피어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빛나고 있었다.
덧.
버려지는 것들에도 다시 피어날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낡은 옷에서 단추를 떼어내듯, 나도 조금씩 내 안의 묵은 시간을 걷어내고 있다. 천 조각을 잇듯 삶의 조각들도 다시 이어진다. 그렇게 오늘도, 내 손끝에서 작은 기쁨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