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의 일상과 마음을 생각하며... (부제. 아버지의 회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날이다.
남들은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 네 시, 눈이 절로 떠진다. 몇십 년 몸에 밴 습관이라 이제는 더 자고 싶어도 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나는 젊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니, 어쩌면 젊을 땐 정말 잠이 ‘없던’ 게 맞다. 자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고, 늦잠을 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죄책감이 들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꼭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하루 네 시간만 자든 며칠을 내리 자든 아무 상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젊은 날처럼 네댓 시간만 잔다. 몸이 이미 그렇게 굳어버린 모양이다.
마누라를 깨워 차에 태우고 스포렉스로 향한다. 벌써 15년째 새벽을 달린다.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딱히 즐기는 게 없던 차, 우연히 수영을 시작했다. 아내의 권유로 수강도 했다.
그런데 결과가 기가 막히다. 아내는 웬만한 선수 뺨치게 실력이 늘었는데, 나는 여전히 개천에서 놀던 개구리 신세다.
마누라는 내 수영하는 폼을 보고는 쪽팔려 죽겠단다. 남들 눈도 생각해서 배운 대로 좀 하라는데, 나는 그게 영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어떤 모양으로 하든 남들이 무슨 상관인가. 선수도 아니고, 내 맘대로 한다고 큰일 날 일도 아닌데 말이다.
수영장에 올 때마다 잔소리를 퍼붓는 마누라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여기 수영하는 사람들 중에 나보다 빠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실제로 그렇다. 속도로는 날 당해낼 자가 없다. 폼은 엉성할지 몰라도 50미터 왕복 열 번은 기본이다.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며 온수풀에서 쉬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한 시간을 꼬박 쉬지 않고 헤엄친다.
그런 날 보고도 마누라는 혀를 찬다.
“내가 운전만 할 줄 알았어도 당신이랑 같이 안 다녔어. 아주 볼쌍사나워서 원…”
새벽마다 운동시키겠다고 모셔오고 모셔가며 애쓰는 남편에게 고마움은커녕 핀잔이라니. 하루이틀도 아니고,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15년쯤 됐으면 이제 포기할 법도 한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성질부릴 마누라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재작년, 딸아이 입을 통해 ‘엄마가 폐암이라 수술을 해야 한대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등골이 서늘했다. 욕쟁이 마누라여도 좋고, 밥을 안 줘도 괜찮았다. 그저 내 곁에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수영장에 다시 함께 나올 때까지는 2년이 걸렸다.
이제 와서 마누라 잔소리가 대수랴. 다 괜찮다. 펄펄 뛰며 욕할 힘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아직은 나와 함께할 시간이 한참은 남았다는 뜻이니까.
마누라는 알까? 이런 내 마음을…
오후에 딸내미가 집에 들렀다. 마누라는 딸을 보자마자 새벽 수영 얘기로 열을 올렸다. 있는 사실만 말해도 될 텐데 꼭 자기 생각을 보태서 흥분한다.
“얘기 좀 들어봐라. 내가 신경질이 안 나는지. 당최 네 아버지는 내 말이라고는 듣는 시늉도 안 해. 내가 원 동네 쪽팔려서 원…”
만날 때마다 시작하는 말도 똑같다.
“아니, 왜 바쁜 애 붙잡고 또 성화요. 얘야, 네 엄마 역성들지 말고 너 할 일 챙겨서 얼른 가라. 네 엄마 얘기 듣고 있자면 하세월이다.”
아차 싶었다. 한마디 거들지 말 걸, 또 괜히 나섰다.
“아니, 당신이 선생님 가르쳐준 대로만 했으면 내가 이 말을 왜 해? 그 왜 약국 뒷집에 사는 그 아줌마 있지? 탈의실에서 나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니까?”
한참을 부아를 내던 마누라는 딸이 가고 나서도 한마디 더 하고 휑 돌아섰다.
젊은 날에는 사는 게 바빠 가족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지나고 나니 그때 보지 못했던 게 보인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나들이 한 번, 외식 한 번도 제대로 못 했다. ‘얼른 자리 잡고 나면 함께해야지’ 했는데, 벌써 팔십이 훌쩍 넘었고 마누라랑 둘만 남았다.
“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로 친구들은 바닷가에서 튜브 두르고 노는 그림을 그려오는데, 나는 한 번도 튜브를 그려본 적이 없어.”
아이의 무심한 옛이야기에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변명할 수도, 미안하다고 위로할 수도 없었다.
‘그 시절은 다 어려웠지’라 말하기엔 너무 뻔했다. 그 시절을 보내며 살아낸 딴 집 가장도 그랬던 건 아니었으니까.
늙고 나니 떠올릴 만한 추억 하나 없는 게 왜 이리 서러운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그늘이 필요할 때,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의 그늘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훌쩍 커버렸고, 우리는 아이들이 그립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염치가 없어 차마 말은 못 한다.
그저 아이들이 우리를 찾아와 주기만 마냥 기다리며,
오늘도 새벽 수영장으로 향한다.
여전히 젊은 날의 버릇처럼, 마누라의 잔소리와 함께 하루를 열어본다.
덧.
우연히,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부쩍 나이 든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짱짱하던 시절,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든든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혹시 폐가 될까 싶어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실까?’ 생각하다가 적어본, 아버지의 일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