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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와 생각 Nov 16. 2021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글쓰기에 앞서서

글쓰기에 대한 철학 1인 출판사의 까다로운 방법들

“The man who has no tincture of philosophy goes through life imprisoned in the prejudices derived from common sense, from the habitual beliefs of his age or his nation, and from convictions which have grown up in his mind without the co-operation or consent of his deliberate reason.”


“철학을 겉핥기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신중한 이성의 동의나 협력 없이 그의 마음에서 자라난 상식, 국가, 신념, 시대의 관습적인 믿음에 기인한 편견에 갇힌 삶을 살아간다.”


Bertrand Russell, The Problem of Philosoph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글쓰기에 앞서서.


활동하는 1인 출판사에서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를 연재하기로 했다. 철학 출판사로 브랜딩을 하고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철학처럼 조직적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굳이 철학이라 하지 않아도, 철학의 특징을 수용해 자기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려한다. 논리, 태도, 전략 등을 다룰 생각이다. 하지만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연재에 앞서,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출판사 대표로서 입장을 밝히는 편이 좋을 듯하다.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는 대부분을 철학적 글쓰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애매모호한 세계를 탐험하는 일이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어떤 방식의 지식이 철학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아 이건 철학이네.” “철학이 아니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철학이 무엇인지 질문하면 대답하기 까다롭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Philosophy를 분리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일은 약간 지겹다.


철학은 지식이다.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다. ‘어떤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대학에서 교육하는 철학의 분과를 살펴보면,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으로 나뉜다. 이에 관련한 전문적 지식만 철학이라고 할까? 아니다. 애초 철학은 이런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과학, 심리학 등도 철학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점점 세분화, 전문화가 되면서 과학 등은 철학에서 분리되었다. 철학에서 과학의 분리를 17세기로 보는 관점도 있다. 철학은 역사 속에서 범위나 성격이 변했다. 정확하게 이게 철학이라고 권역을 설정하는 일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철학은 분명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다. 


철학적 지식은 해석이다. 일반적인 철학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랑은 무엇인가? 감정은 무엇인가? 보편과 개별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타인은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운명이란 있는가? 신은 있는가? 등의 질문이다. 실천에 대한 질문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질문들이다. 애매모호하다. 그럼에도 주식이나 돈 이야기만큼 흥미를 끈다. 실천적인 사람들은 무슨 이런 질문을 하냐고 묻지만, 행복한 삶에선 이런 질문이 관장하는 부분도 있다. 돈이 없으면 불행하기도 하지만, 철학의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으면 공허한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으로 환원하지 말자.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지식은 해석이라고 부르자.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애매모호한 만큼, 대답 또한 애매하다. 과학은 명확하게 성취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철학은 파고들어 갈수록 성취가 애매해진다. 어떤 사실을 밝혀내고 성취하였나 생각하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철학자는 매우 드물다. 그만큼 철학은 불확실한 대답을 야기하는 질문과 이에 따른 해석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애매모호함은 철학의 장점이다. 교리는 철학과 상반되는 부류의 지식이다. 교리에 대한 지식은 진리라고 선언하며 반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지식은 답습이거나, 자기 확신을 야기하는 지식이다. 철학도 그럴까? 철학은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에 대한 해석인 만큼, 자기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을 갖는다. 오히려 자기 확신을 버려야 가능한 질문과 대답이다. 예를 들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숙고하는 일도 철학이라고 한다. 결국  철학적 사고를 하는 모든 사람은 애매모호한 세계를 탐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애매모호함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가능성이다. 


철학은 가능성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이다. 애매한 대답을 야기하는 지식은 어떤 방향으로든 향할 수 있다. 철학의 애매함은 결국 지식에 대한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단 최소의 논리는 갖춰야 한다). 이 자유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자유는 오히려 자신이 어떤 분야에 통달했다고 선언하는 모든 이를 향한 반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에게 세계는 주체의 경직되고 정형화된 판단 아래 위치한다. 애매함, 가능성, 자유는 정형에 반대하고 비판적 사유를 촉구한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경직된 사상의 발현인 나치에 가장 먼저 반대했던 독일 철학과 학생들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을지 모른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자신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애매하지만 가능한 해석을 통해 지식을 얻는 일이 철학이다.


철학을 경험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있다면 글쓰기를 해보는 일이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자기 밖의 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가능한 해석을 통해 지식을 얻는 일을 표현해야 한다면, 글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고갱처럼 복잡한 상징이나 데이빗 보위나 스팅처럼 철학적인 음악을 하기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글은 종이와 팬만 있으면 가능하다. 지성, 이성, 감각은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모두가 쓰는 내용과 해석이 다를 테고, 철학도 글쓰기도 답은 없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자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를 공개한다.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는 매주 화 금 정오12:00 이전에 인스타그램 (@nousandmind), 브런치 (@사이와 생각)를 통해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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