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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와 생각 Nov 19. 2021

'나'에게 가혹하지 않은 글쓰기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1인 철학 출판사의 방법들 (1화)

‘나는’이라고 글을 시작하면 왠지 초등학생의 글쓰기 같다. 막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 초등학생의 일기는 '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는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본다.’ ‘나는 오늘 기분이 별로다.’ 그림일기 첫 문장 같다. 어른은 어떨까? 국제학생이 영미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선 토플이 필요하다. 토플에는 작문 시험이 있는데, 글쓰기 강사는 늘 ‘I’ 즉 나를 주어로 쓰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개인적인 의견이나 기분을 수동태로 적었다. 유학을 시작하고, 국제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어떤 한국 학생은 글을 쓸 때 I를 써도 되냐고 교수님께 묻기까지 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한글로 글을 쓸 때도 나라고 하지 않았다. 내 글인데 나는 '나'를 왜 주어로 쓰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인가?


그에 반해 다른 타인의 주장을 소개할 때 주어를 반드시 명시했다. 나에게 가혹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글쓰기였나? 예를 들어 ‘칸트는 주체가 시간과 공간을 선험적으로 인식하다고 밝혔다’ 혹은 ‘헤세는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썼다. 아마 나는 이런저런 대작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만큼 3자의 주장에는 관대했다. 3자의 의견을 인용했지만, 글을 쓰는 나는 '나'를 왜 이렇게 꺼려했을까? 권위에만 의존하고, 개인적인 의견에는 자신감이 없었을지 모른다.


뉴욕 타임스 기자들은 입사 전에 ‘the Elements of Style’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는다고 한다. 스트렁크와 화이트가 저술한 글쓰기 책으로 약 한 뼘 정도 되며 상당히 얇다. 미국에서 글쓰기 교본을 한 권 뽑으라면 대부분 이 책을 뽑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트렁 크는 능동을 강조했다.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할 때, 능동적인 목소리가 더 직접적이고 생생하다고 말한다.


“The Active voice is usually more direct and vigorous than the passive.”

(윌리엄 스트렁크와 화이트, The elements of style 4th ed. (New York: Longman, 2000), 18쪽.)


능동태는 동사의 형태를 뜻한다. 동사를 능동으로 쓰면 목적어가 아닌 주어가 드러난다. 누구는 생각, 기분, 행동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중복으로 생략하지 않는 한 드러난다. 능동태 문장에서 글을 쓴 저자의 생각, 느낌, 행동이라면 분명 '나'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겸손하게 쓴다고 나를 안 쓰기도 하지만, 쓰다 보면, 어려울 일 없다. ‘나는 플라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의 주체가 자신임을 직접 드러내는 편이 좋다.


'나'는 독자와 저자를 분명하게 구분해준다. 출판을 목표로 하는 글쓰기는 저자와 독자를 전제로 한다. 즉 출판물은 나의 관점 혹은 독자의 관점 둘로 나뉜다. 책 자체는 저자와 독자의 소통이기도 하지만, 긴장이기도 하다. 우리의 관점은 나와 너의 관점을 확인한 후 가능하다. 아직은 저자와 독자가 분리되어 있을 때, 독자가 ‘우리’라고 말하기 전, 저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나라고 명시하는 편이 좋다. 공손하게 표현해 우리라고 묶어서 말하면 각기 다른 둘의 관점이 희석된다, 직접 적인 예가 있다면, 작가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을 언짢게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우리라고 할까?” 


독자의 기분을 추정해 마음대로 우리라고 쓰면 곤란한 생황이 생기기도 한다.


저자는 ‘나’를 주어로 삼으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책임을 명시할 수 있다. ‘나’라는 무게 있는 단어다. 자신의 의견을 주체를 명확하게 표시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작가의 자유라지만 책임 또한 온전히 저자가 진다. 저자의 생각, 기분, 행동을 표현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 게시글만 해도, 잘못된 글에 대한 비난은 저자에 대한 비난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나를 숨기는 일, '나는'을 지우는 글쓰기는 지양하는 편이 좋다. 앞에서 말했지만 생략은 어쩔 수 없다.


정리하면, 저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편이 좋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해 직접적으로 저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독자의 생각을 추정하지 않고, 우리라고 희석하지 않을 수 있는 분명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또한 글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해, 저자로서 책임감을 보일 수 있다.


더 이상 ‘나는’에 대해 가혹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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