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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와 생각 Dec 17. 2021

깊이 있는 글쓰기를 위한 테크닉 2: 소고기와 개념분리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1인 철학 출판사의 방법들

소고기는 맛있다. 부위별로 맛이 다른데도 대체적으로 맛있다. 소고기를 생각해보면, 치맛살, 갈비, 안창살, 안심, 등심 등이 있다. 소고기라는 개념 아래 다양한 부위가 있다. 개념 분리하기는 소고기 분리하기와 같다. 적절한 부위를 탐색하고 세부 개념을 확장하는 작업이다.


개념 분리하기는 사건 속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드러낸다. '장미는 빨갛다'라고 말하면 포착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녹색의 줄기와 입사귀, 장미가 걸려있는 펜스 등이다.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 일은 의식의 집중이다. 장미가 빨갛다는 개념은 장미꽃에 집중했으나, 다른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사실 경험 이면에는 더 많은 사실들이 놓여있다. 배경처럼 걸려있다. 장미 속에 '빨강' 개념, 그리고 '빨강'이 아닌 개념을 분리한다면 장미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다. 추상적인 개념에도 그렇다. 사랑이라고 하면, 자녀, 아내, 애인, 부모님 등등의 사랑으로 나눠볼 수 있다. 또 이에 따라 윤리, 아름다움, 맹목 등등으로 추상할 수 있다. 


개념을 분리할 때, 반대 개념을 생각하면 쉽다. 장미는 빨갛다. 장미를 지지하는 개념 중 빨강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빨강의 반대말은? 인쇄용 CMYK 색상 혼합에서 마젠타(빨강)를 줄이면 시안(파랑)이나 노랑이 잘 보인다. 그렇다면 빨강의 반대는 파랑일까? 아니다. 빨강의 반대는 '빨강이 아닌 색'이다. 관습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빨강의 반대는 파랑, 남편의 반대는 아내 등 관습적으로 반대 개념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확한 반대 개념은 빨강이 아님, 혹은 남편이 아님이다. 빨강이 아님 속에, 파랑이 있고, 남편이 아님 속에 아내가 있다.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형 동생이 있을 수도 있다.  


실천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마티니치(Philosophical Writing: An introduction의 저자)는 우디 엘런의 영화를 예로 들었는데,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변형해 이용하겠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묘사해보면, ‘남편은 가장이다’라고 했을 때, 남편은 가장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이 아닌 속성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남편은 가장이 아닌 속성이 있을까? 맞다. 지난달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다가 혼난 나의 친구는 가장이다. 하지만 가장이라면 가족의 리더인데, 플레이스테이션을 구매해서 혼났다면 가장이 아닌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일까? 가장이 아님이라는 속성을 ‘허울뿐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혹은 실질적 리더는 아내다. 그렇다면 ‘가장이지만 허울뿐인 남편이다’라고 정리해 글을 쓸 수 있다. 


개념을 분리하고 또 그 개념을 분리하면 새로운 범주가 계속 생긴다. 글쓰기는 경제적이어야 한다. 절약해야 한다. 에피소드와 문장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친 개념 나누기는 독자의 지루함만 가중시킬 수 있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개념 분리하기에 능통했다. 천사는 무형의 물질이다는 개념을 가지고, 머리카락 위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갈까? 같은 생각까지 했다. 논리를 낭비하는 일이다. 오캄은 논리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며, 지나치게 확장해 가지 말라고 했다. 


개념 분리하기는 사건, 사물, 생각 안의 개념을 분리해 탐구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드러난다. 하지만 관습을 따르는 오류에 노출될 수 있고, 지나치게 개념을 분리하면 경제적인 글쓰기에 실패할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 분리해야 할까 생각한다면 글을 쓰는 목적을 생각하자. 소고기에서 안심을 분리하는 정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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