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1인 철학 출판사의 방법들
영어로 명확하다는 말은 재미있다. 교수가 학생에게 설명을 한 후 '명확하죠?'라는 말을 'Crystal Clear? (크리스털 클리어)'라고 표현한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명확하다는 말은 크리스털을 들여다보듯 깨끗하다는 말인가? 무엇을 들여다 보나 생각했다. 문장을 들여다보며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의미의 외피가 문장이라면, 작가는 독자들이 알아볼 수 있게 문장의 외피를 다듬어야 한다.
책을 교정할 때마다 문장에 대해 고민한다. '독자들이 읽기 편한 문장일까?' 문장이 의미의 외피라면, 긴 문장은 외피를 두껍 게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독일적인 사고방식은 외피가 너무 두껍다. 문장을 길게 쓴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그런 문체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칸트가 그랬고, 해겔이 그랬다. 칼 바르트? 한문단이 한 문장이다. 외피가 단단하고, 의미가 조밀하다. 자기 의도의 표현을 위해 필요하다지만, 과연 독자들에게 친절한가? 세 저자의 책을 읽은 사람이 적은 걸 보면, 친절한 문장은 아니다. 글쓰기에 답은 없지만, 긴 문장은 의미로 들어가기 위한 외피가 너무 두껍다.
출판을 계약한 작가님께 문장을 짧게 줄이자고 부탁드렸다. 작가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출판사 편집자 입장으로 고민이 되긴 한다. 작가님께서 쓰신 글의 맛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글을 잘 쓰는 명필들의 글을 찾아봤다. 기준을 잡고 싶었다. 문장에 스탠다드가 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세계문학전집 정도면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책이기도 하고. 대가의 글이라 (번역이긴 하지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문학전집도, 자주 읽는 인문 서적 중 잘 읽히는 책 대부분 짧은 문장을 사용했다. 스콧 피츠 제럴드, 다자이 오사무 모두 듣기만 해도 바로 이해될 정도의 문장을 사용했다. 짧게 쓰자. 작가님께서 쓰신 문장을 약간 짧게 수정해, 보여드렸고, 작가님께서 의미 전달이 잘 된다며 기뻐하셨다.
친구와 속초로 여행을 갔다. 속초에도 유명한 책방이 많아, 둘러봤다. 책 파는 만드는 사람의 눈이 그렇다. 친구는 말했다.
"어떤 책이 왜 이리 느끼할까?"
"무슨 말이야?"
"요즘 트렌드인지는 모르겠는데, 느끼한 책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글쓰기에는 답이 없다. 화려한 문장에 공감하고 희열을 느끼는 독자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담백한 문장이 좋다. 화려한 형용사나 부사, 현학적인 말을 사용하는 책을 보면 느끼하다. 까르보나라를 먹으면 느끼한 맛에 머리가 아프다. 느끼한 책도 처음에는 달큼한 맛에 좋다가, 점점 물린다.
작가님을 찾아갔다. 작가님께 담백하게 쓰자고 했다. 작가님께서 다시 흔쾌히 동의하셨고, 글을 담백하게 바꾸는 작업을 했다. 작가님의 글이 담백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황의 맛을 살려보고 싶었다. 담백하면 문체가 별로일까 고민했지만, 오히려 담백하니 서사가 살아났다. 작가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 문장을 써내려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담백한 문장은 과장을 덜어낸 문장이다. 형용사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사는 덜어낼 수 있다면, 덜어내는 편이 좋다. '너무나 경이로운 나이아가라' 보다는 관경을 묘사하는 편이 담백하다. '물이 쏟아지는 양이 많아 증발하는 열이 많은지, 한 여름에도 재킷을 입지 않으면 춥다' 같이 묘사하는 편이 좋다. 담백한 글은 독자에게 음미할 공간을 만들어 준다. '이건 맛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상황 묘사를 통해 독자가 직접 글을 음미하도록 한다.
명확하고 담백하게 쓰기는 계속 다듬기를 통해 가능하다. 글쓰기 당시에 기분이 취해 쓰다 보면 길고, 화려하게 쓰게 된다. 이럴 땐 잠깐 묵혀두었다가 돌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