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싫지만 시리즈 2편
직주근접(職住近接). 말 그대로 직장과 주거지가 가깝다는 의미다. 백과사전에서는 직주근접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직주근접(職住近接)이란 근로자의 직장과 거주하는 집이 가까운 것을 의미한다. 직주근접은 물리적인 요인과 시간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직장과 집이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워도 통근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며, 물리적으로 멀어도 출퇴근 시간이 짧을 수 있는데, 이는 도로나 대중교통 등의 교통수단이 발달할수록 직주근접의 효과를 높이기 때문이다. (출처 : 두산백과)
세종시는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공무원 입장에서 말하자면) 최소한 물리적 거리 측면에서는 직주근접이 구현된 도시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종은 서울에 비해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압도적으로 적다.
첫째로 행정수도랍시고 조성한 도시의 사이즈가 코딱지만 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정부세종청사가 도심 한가운데 떡하니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가운데 정부청사를 두고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형상이다. (동쪽에는 호수공원, 수목원, 중앙공원이 있다)
나는 회사에서 반경 2km 이내에 살고 있다. 도보로 20여 분, 자전거로는 10분 거리이니 보통의 서울 사람들이라면 쾌재를 부르며 오갈 거리지만, 세종에서 이 정도면 직주근접 축에도 끼기 어렵다.
회사가 내려다 보이는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사람도 여럿 있기 때문에 (집라인이나 미끄럼틀을 만들어 회사와 연결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옥상에 착! 내리는 거지) 통근시간 5분 이내 정도는 돼야 이 구역에서 콧방귀를 뀔 수 있다.
여하튼 나는 세종시 기준 제법 회사로부터 먼 곳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다닌다. 홍대에서 합정역 정도의 거리를 굳이 차 타고 다닐 이유가 무엇이냐 물을 수 있지만,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 서울과 세종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뉴욕에선 걸어도 텍사스에서는 차로 다니는 것처럼 세종시(구 연기군)에서는 차가 기본 이동수단이다. 세종에는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중’이 없다. 유령도 외로워할 유령도시다) 혹시라도 세종에 관광을 오겠다면 우선 재고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그럼에도 고집을 꺾지 않겠다면 자차를 이용해서 올 것을 권한다.
세종에도 굵고 짧은 러시아워(Rush hour)가 존재한다. 주중 오전 8:20부터 8:50 사이다. 이 시간에 출근하려면 납득하기 어려운 교통체증을 감수해야 한다. 누가 회사에 도착하는 순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말하기라도 한 걸까. 양보도 매너도 없이 끼어드는 시간이다. 방심했다간 접촉사고가 날 수도 있다.
사기업에서는 유연근무나 재택근무가 보편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공무원 조직에서는 아직도 정시 출근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힌다. 일을 안 해도, 일을 잘 못해도 출근만 일찍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9시 직전에 차가 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납득할 수 없는 교통체증이라고 말한 이유는 왕복 4차선에 불과한 ‘한누리대로’ 때문이다. 이름이라도 소로라고 지었으면 양심이라도 지켰을 텐데, 인구 40만, 장차 100만을 꿈꾼다는 도시의 대동맥을 왕복 4차선으로 깔다니. 협심증 걸린 도로를 만들어 시민 모두를 협심증에 걸린 듯 고통받게 할 셈이었던 걸까? 날마다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 한숨을 쉬기 일쑤다. 세종시에 사는 친구가 있다면 카톡으로 아무 맥락 없이 ‘한누리대로 good?‘이라고 메시지를 보내보자. (절대 두 번은 하면 안 된다. 절교당할 수도 있다.)
실컷 호들갑 떨었지만, 러시아워라고 해봐야 집에서부터 회사까지의 통근 시간은 15분 남짓이다. 신호등 타이밍이 좋거나 운전 중에 카톡 하느라 얼빠진 앞 차를 잘만 앞지르면 10분 내에도 출근이 가능하다. 운전하며 노래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선곡에 신경 써야 한다. 세 곡 정도 들으면 도착해 버리기 때문이다.
야근이라도 해서 집에 밤늦게 돌아갈 때면, 새삼 직주근접을 실감하게 된다. 도로 정체가 없으니 출발한 지 5분이면 지하주차장에 도착한다. 자정 넘어 퇴근하면 점멸신호로 바뀐 신호등 덕에 말 그대로 ‘분노의 질주’가 가능하다.
굳이 차를 타고 다닐 필요가 없겠다고 다들 생각할 텐데,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텍사스에 빗댄 건 과했다. 자전거만 탈 줄 알아도 세종에서의 출퇴근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서울에 따릉이가 있다면 세종에는 ‘어울링‘이 있다. 연 3만 원만 내면 무제한 이용이니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출근 시간엔 세종시 내 모든 어울링이 청사로 향하고, 청사 앞 늘어 선 수십대의 어울링은 세종시의 흔한 풍경 중 하나다.
그럼에도 나는 차로 회사를 오간다. 오늘은 좀 더우니까, 오늘은 좀 추우니까, 피곤하니까, 늦었으니까, 정장을 입었으니까, 근처 어울링이 없으니까, 가방이 무거우니까 등등 핑계도 가지가지다.
시동은 자주 거는데 주행거리는 너무 짧아서 자동차 배터리는 늘 방전 위기에 처한다. (원래 근거리 주행은 차의 수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혹환경’이라고 말하는데 배터리 수명도 줄고 엔진오일 교체주기도 짧아진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차도 달리고 싶다) 03년식 올드카를 몰고 다닐 때는 차가 나이 들어 그런 줄 알았는데 새 차로 바꿨음에도 배터리 경고등은 꺼질 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바꾸지 말걸 그랬다. (정 많이 들었었는데.)
자전거를 아예 타지 않는 건 아니다. 가끔 쾌청한 가을날 아침이나,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날에는 어울링을 이용한다. 자전거로 이동해도 회사는 십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걸어본 적은 없지만 걸어도 얼마 안 걸릴 거리임은 분명하다. 땀범벅으로 출근할 자신이 있으면 10분 만에 회사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세종은 이상하리만큼 직주근접이 실현된 이상적인 도시다.
서두에 백과사전의 ’직주근접‘ 정의를 소개했다. 직주근접 정의의 말미에는 ’직주분리‘ 개념이 함께 등장한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직주근접과 상반되는 개념은 직주분리(職住分離)이다. 도시권이 확대되면서 업무기능은 대도시에 집중되고 주거기능은 주변 근교지역이나 위성도시에 발달하게 되는데, 대도시에서 근무하고 주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출퇴근으로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긴 통근 시간은 과로와 다를 바 없으며, 직주근접은 충분한 휴식 시간을 확보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므로 개인 생산성은 물론 국가 생산성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백과사전의 직주근접 정의를 기술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직장에서 꽤 떨어진 곳에 살았다는 티가 역력히 난다. 먼 길을 오가느라 맺힌 한이 얼마나 컸으면 직주근접을 소개하는 글에 직주분리까지 소개한단 말인가.
위 백과사전에서는 ‘전문가들은’이라고 둘러대며 직주분리가 긴 통근시간을 유발하고, 직주근접은 휴식시간 확보와 스트레스 감소는 물론 개인 삶의 질을 향상시켜 무려 ‘국가 생산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세상에. 무릎을 탁 쳤다. 세종시를 설계한 사람들에겐 나같은 일개 시민은 깨달을 수 없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국가생산성 향상’이라는.
맞다, 비꼬는 말이다. 국가생산성 향상? 나가도 너무 나갔다. (서울처럼 과밀한 도시에서의 생산성낭비를 지적하기에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위 백과사전은 직주분리라는 용어의 의미를 편파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언제부터 사전이 작성자의 주관적 판단을 담는 그릇이 되었단 말인가. 직주분리는 부정적 뉘앙스를 품은 단어가 아니다. 적절한 직주근접이 삶의 질을 높이듯 직주분리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과도한 직주분리가 삶의 질을 하락시키듯 과도한 직주근접도 삶의 질을 하락시킨다.
직주근접이 물리적/시간적 개념을 담은 의미라면 직주분리는 관념적 개념에 가깝다. 직주근접과 직주분리를 한자어의 의미만을 바탕으로 반의어로 분류하는 건 일차원적 해석에 불과하다. (이 또한 내 해석이다. 나는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이 아니니 자유로울 뿐.) 보통은 ‘직주분리가 필요해’라고 표현하거나 ’직주분리가 안 돼서 문제야‘라고 말한다. ’직주분리가 문제야‘라는 용법이 잘 쓰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직장과 집이 극단적으로 가까워 거주지와 근무지가 분리되지 않는 경우, 즉 적절한 직주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식사하러 가는 식당과, 퇴근 후 친구들과 방문하는 식당, 주말에 연인과 방문하는 식당이 모두 한 골목에 위치한다. 세종은 공무원 비중이 높기로는 세계적인(지구상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도시이니, 실제로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부지기수다.
고시생 시절 학원-독서실-원룸을 오가며 보낸 신림동에서의 일상 못지 않게 세종의 일상은 단조롭다. 어쩌면 고시촌에서 몇 년을 보냈기에 세종시에서 그나마 적응하고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배부른 소리 맞다. 토할 것처럼 배부르다. 직장동료, 선후배, 상사와 모두 한 동네에 사는 게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는 중앙부처 공무원뿐 아니라 (또 다른 강제이주의 피해자인) 지방이전 공공기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낄 것이다. (주말 이마트에서 직장 상사를 발견했다면 그를 쫓아가 인사하자. 상사를 괴롭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세종시는 직주근접의 꿈이 실현된 도시이자, 동시에 직주분리에는 완벽하게 실패한 악몽같은 도시다. 진정 퇴근하기 위해서는 주말에라도 세종을 떠야 한다. KTX 문이 열리고 서울역에 한 발을 내딛을 때, 비로소 퇴근한 기분이 드는 건 이런 탓이다. (사실 지금 이 글도 서울행 KTX에서 아이폰을 쥐고 쓰는 중이다)
물리적 퇴근이 쉬울수록 심리적 퇴근은 어려워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종은 실상 서울에 비해 퇴근이 어려운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