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작아지는 만큼 집은 커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6편

by 할때하자


며칠 전, 글로벌 기업의 한국 오피스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정신없이 일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짬을 내 방문한 것이라 건물 앞에 다다를 때까지 별 감흥이 없었다. 화려한 빌딩 로비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도 별 느낌이 없었다. 층을 선택하려면 엘리베이터 밖에서 터치스크린을 조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건물 좋네~ 정도였다.

그러나 오피스에 들어섰을 때는 달랐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나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줄은 알았지만, 높은 빌딩에 위치한 줄도 알았지만 근무여건이 이토록 차이 날 줄은 몰랐다. 장담컨대 공무원의 근무여건이 이 정도 수준이 될 일은 없다. 족히 100년은 지나야 할까? 아니다. 공무원은 그럴 수는 없다.

혹자는 SNS의 폐해 중 하나로 타인과 비교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짚는다. 그래, 그런 느낌이었다.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상대적 박탈감. 이 글은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다. 나는 알아서는 안 될 현실을 알아버렸다.


1. 이런 걸 보고 넘사벽이라고 하는구나


오피스에 들어서자마자 경악했다. 우선 쾌적했다. 양면이 통창으로 뚫려 햇볕이 환하게 쏟아졌다. 여러 원색의 조합으로 다채로운 인테리어도 한몫했다. 오피스 좌측에는 편의점처럼 온갖 과자와 음료가 즐비했다. 오후 3시쯤이었는데, 직원들은 자유롭게 샌드위치, 과자 등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며 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둘러보고 있는 내게,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들을 집어가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집에 갈 때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고도 덧붙였다. 거참.


이것이 21세기의 회사입니까?


사무실은 완전한 자율좌석제로 운영되며, 기업 특징을 살려 미니 시사회가 가능한 상영실도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흥행작 명칭을 딴 회의실들도 인상 깊었다. 햇빛 덕분인진 몰라도, 모든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항상 죽상을 쓰고 있는데. 쓰읍.


작년 연말, 우리 사무실도 조직개편에 맞추어 새 단장을 마쳤다. 내 자리는 3층에서 2층으로 한층 내려왔고, 새 단장을 했음에도 근무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2층은 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춥기 때문에 우리 회사 모두가 기피한다. 그런데 이번에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인원을 밀어 넣으면서 개인당 할당된 공간이 더 좁아졌다. 책상은 1600x1200에서 1200x1200으로 줄었다. 좁은 공간을 극복해 보고자 모니터암을 달았지만 역부족이다. 봐야 할 자료는 넘쳐나고 수납공간은 부족하다. 있던 인테리어 욕심도 사라질 정도로 열악하다. 의자도, 컴퓨터도 모두 중소기업 제품이라 성능은 포기해야 한다.

그뿐인가. 2층은 손이 얼 정도로 춥다. 몇몇 직원은 장갑을 끼고 일한다. (나도 낀다. 농담이 아니다.) 추워 죽겠는데 회사에서는 주기적으로 개인 전열기구 단속에 나선다. 화재 위험 때문이란다. 때문에 옷을 껴입는 수밖엔 없다. 전열기구 단속에 걸리면 물건도 압수당하고 얄짤없이 설에 벌당직을 서야 한다. (설에 집 가지 말고 회사에 나오라는 소리)

사무실 바로 위층에는 헬스장이 있어 (점심때 운동하러 가기는 편하지만 약수터 수준의 녹슨 운동기구뿐이다) 오후 6시가 지나면 쿵쿵대는 층간소음에 시달린다. 모든 가구는 회색톤이고 모든 사람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깔려있다. 누구도 웃지 않는다. 간혹 들리는 웃음은 조소, 실소뿐이다.


리모델링 전 내 사무실(좌), 회사 헬스장(우)

2. 헌신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민낯


공무원이 될 때부터 알지 않았냐고? 각오하지 않았냐고? 그니까 각오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열악함을 넘어 수치심이 들 정도다. 열악한 근무환경, 낮은 임금, 국민들의 비웃음, 무시, 질타, 친구들의 측은지심까지. '헌신'이라는 한 단어에 담긴 의미는 이리도 깊었다. 평생 인정받지 못하고 이름 없이 살다가 떠나는 게 숙명인가? 싶다.

누구든 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당신의 사무실은 낡고 열악할 것이며,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것이다. 윗사람들의 호들갑에 항상 뛰어다녀야 하고 항상 심각해야 한다. 장관, 차관, 실장, 국장, 조직 그 누구도 스스로의 근무환경에 만족하지 못한다. 장차관도 임금이 적다고 한탄하는 조직, 이것이 헌신으로 포장된 오늘날 공직사회의 민낯이다.

우리에겐 통창도, 남산뷰도, 넓은 좌석도, 따뜻한 사무실도 없다. 그럼 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일해야 하나? 며칠 동안 장점을 찾고자 애썼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래도 서울에 비해 나은 점이 하나 있었다.


3. 사무실 면적과 집 면적은 반비례한다


글로벌 기업의 사옥에 다녀온 충격이 가시지를 않아 서울 친구들을 만나 방언을 늘어놓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나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삶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이 원룸인데 사무실이 아무리 좋으면 뭐 하냐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서울에 혼자 사는 내 친구 중 나보다 큰 자취방에 사는 녀석은 없다. 나는 세종으로 영원한 유배를 온 대신, 혼자 방 3개 화장실 2개인 20평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화장실 하나는 게스트용이고, 방 하나는 드레스룸, 하나는 서재로 쓴다. 거실에는 내 키보다 큰 야자수를 기른다.

사무실이 좁아질수록 집은 넓어지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함을 깨달았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회사 규모가 작아지는 대신 집값도 함께 저렴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다. (극히 일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 동탄이나 부산 등)

나는 입주할 당시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하고 그 뒤로는 집에 돈을 잘 쓰지 않았는데, 문득 집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무실 인테리어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부럽다면, 대신 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에 살면 되니까 말이다.



4.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적으로 부모님집에 얹혀 살지 않는 이상에야 서울에서 20~30대 직장인이 넓고 쾌적하게 살기는 어렵다. 내로라하는 기업에 다녀도, 전문직이라도, 결혼 전에는 만족할 만한 거주지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만족할 만한 집에 살기 위해서는 만족하기 어려운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

대신 세종시에서는 직장 환경에 만족할 수 없는 대신 집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세종시 원룸 월세가 50~60만 원 수준인데, 청년 전세대출이나 버팀목 대출을 받으면 월 20~30만원을 부담하며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가 있다. (세종시에서는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가 구축으로 분류되며, 59제곱을 전세 2억에 구할 수 있다)

가전제품이나 가구야 사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당근 마켓이 있지 않은가? (나도 대부분의 가전, 가구를 당근에서 구했다) 세종에는 결혼하면서 가전과 가구를 당근하는 사람이 많다. 그 덕에 적은 돈으로 집을 꾸밀 수 있다.

간혹 결혼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면, 으리으리한 인테리어에 놀란다. 30평대 아파트 한 채 매입해 리모델링까지 한다 해도 서울에서 30년 된 아파트 전세 들어가는 돈보다 부담이 적으니, 대리석을 깔고 85인치 티비에 시스템 에어컨을 다는 게 가능하다. 이쯤 되니, 근무환경과 주거환경의 퀄리티를 합해 삶의 질을 따진다면 서울이나 세종이나 큰 차이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서울을 좋아한다. 기회만 되면 서울로 돌아가 기꺼이 원룸에 살 의향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인정하기 싫지만, 세종시에서는 넓은 집에서 구르며 쾌적하게 살 수 있다. 오늘도 우물 안에서 이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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