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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May 16. 2023

하루 한 가지 개념이라도 제대로 이해하자

공부는 양보다 질이다


 5월 중순인데 32도를 기록했다. 봄은 온 데 간 데 없고 여름이 덜컥 찾아왔다. 유난히 뜨거운 5월이다. 이렇게 더우면 공부할 때 쉽게 지치기 마련인데, 땡볕에 고생할 수험생들을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2차 시험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만큼 다들 힘들 텐데 나도 응원 겸 글이라도 활발히 써보려 한다. 오늘은 공부를 '잘' 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1. 치밀한 계획은 양날의 검이다


  흔히들 고시생에게 적합한 MBTI는 ISTJ라고들 말한다. 외로운 고시생활을 곧잘 버티고,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감정 기복이 적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계획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ENFJ라 이 기준에 따르면 고시 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았는데, 여차저차 관문을 넘었다. 극J답게 계획을 꼼꼼히 세운 덕이 아닌가 싶다.

  고시 공부는 양이 방대하고 과목도 여럿이기 때문에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본래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다고 (P성향이라고 주장하며) 계획 없이 공부하다가는 허송세월할 위험이 크다. PSAT을 비롯해 2차 과목까지 빈틈없이 준비하려면 주어진 시간을 잘 배분해야 한다. 한 과목에서 과락(2차 기준 40점 미만)을 받으면 평균 점수로는 커트라인을 넘고도 (한 과목이 과락임에도 합격선을 넘을 정도면 나머지 과목에서 탁월한 성적을 보인 셈이다) 탈락할 수 있다. 내 주변만 봐도 여럿 있었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나 원래 기본이 어려운 법.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은 많아도, 계획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양적 목표만으로 계획을 세운 나머지 질적 목표를 놓치는 우를 범한다.


2. 목표에는 정량적 목표와 정성적 목표가 있다


  실무를 하다 보면 용역사를 선정하거나 여러 정책대안 중 하나를 택하는 등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이때 흔히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비교하게 되는데, 평가지표는 정량지표와 정성지표로 나뉜다.


정량(定量) : 양을 헤아려 정함, quantitative
정성(定性) : 물질의 성분이나 성질을 밝히어 정함, qualitative

 

   정량지표는 계량이 가능한 영역을 판단하는 지표이고 정성지표는 계량이 불가능한 나머지 영역을 판단하는 지표다. 예를 들어 정책을 수행할 용역사를 선정할 때 해당 기업의 직원 수, 신용등급, 매출규모 등은 정량지표가 되고, 정책에 대한 이해도, 참신성, 수행 경험 등은 정성지표가 된다. 정책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할 때에는 명확한 정량/정성지표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관점에서 평가하여 하나를 택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목표에도 정량/정성 목표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침마다 다이어리에 눌러쓰는 계획은 '정량적 목표'만으로 점철되기 쉽다. 정성적 목표(예: 열심히 공부하기) 등은 당연히 하루 일과에 내재된 목표지만, 달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이어리에서는 생략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생략된 정성적 목표들이 실제 공부과정에서도 뒷전이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3. 정량적 목표만 추구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정량적 목표만을 추구하는 공부를 하면 자칫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나도 한참을 그렇게 고생했다. 아래 사진을 보자.


2015년, 재시생 시절 세웠던 다이어리. 정량적 목표로 가득하다

  

  위 사진은 2015년 재시생 시절 내가 직접 썼던 다이어리다. 좌측은 3순환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이고, 우측은 2차 시험을 3주 앞둔 6월 중순이다. 하루 일과가 '~까지 풀기', '~까지 정리' 등 정량적 목표로 가득하다. 결과는 어땠을까? (다른 요소들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처참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성적은 커트라인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당시에는 주간 목표도 세웠다. 'GS3 매일 예복습!', '스터디 예복습', '통계&행법은 매일!' 등 죄다 양적인 목표뿐이었다.

  계획을 세우는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당시 나는 정량적 목표만을 좇아 뛸 때 무엇을 놓치는지 잘 몰랐다. 정말 공부한 지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내가 본질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근육을 키워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헬스의 궁극적 목표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꽤 많은 사람들은 엉터리 자세로라도 더 무거운 무게에 도전하거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정해진 세트 수를 채우려고 빠르게 동작을 반복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횟수를 줄이고 무게를 낮추더라도 정자세로 천천히 운동하는 게 효과적인데도 말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당장 더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많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나음에도 당장 눈앞의 정량적 목표로 맹목적으로 뛰어가게 된다. 그것이 당장의 성취감을 주는 데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계획을 정성적 목표로 세울 수는 없다. 계획은 '달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므로 정량적 목표가 중심이 되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항상 정성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잊어선 안 된다. 자칫 양적인 목표만 추구하다가 공부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할 때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하는 정성적 목표는 무엇일까?


4. 하루 한 개 개념이라도 제대로 이해하자


  2차 시험장에서 10페이지에 달하는 답안지를 술술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이론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이해도 해야 한다. 이해가 배제된 암기는 객관식에서나 통한다. 서술형 답안에서는 이론을 응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이해를 못 했거나 잘못 이해한 경우 숨길 방도가 없다. 그러니 '경제학 3장, 4장 읽기'라는 정량적 목표 뒤에는 항상 '경제학 3장, 4장에 나오는 개념들 제대로 이해하기'와 같은 정성적 목표가 함께해야 한다.

  경제학을 예로 들자면, 미시경제학 초반부터 접하는 MR, MC 등의 개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해당 개념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물었을 때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지만, 생각보다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초시생이나 재시생일 때는 질문받을 일도 없으니 알기 어렵다. 3년 차~4년 차에 접어들고 똘똘한 눈빛을 가진 (맑은 눈의 광인) 후배들이 들어와 순진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어서야 '내가 제대로 아는 게 없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2차 시험 다섯 과목을 통틀어도 익혀야 하는 기본개념과 중요이론이 500개를 넘지는 않는다. 1년은 365일이니, 우리가 개념 또는 이론을 하루 하나씩만 제대로 이해했다면 불과 1년 반이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인 셈이다. 한 번 제대로 개념을 이해하면, 훗날 암기했던 내용을 '잊을' 수는 있어도 이해를 '잃지는' 않는다. 즉 정량적 목표인 '몇 문제 풀기' 뒤에는 항상 정성적 목표인 '이해하기'가 있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본질적인 목표임을 알아야 한다. 문제를 많이 푼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다.


  이제는 계획을 세울 때 정성적 목표가 무엇인지 항상 돌아보며 계획을 보완해 보자. 매일의 목표는 정량적 목표가 되더라도, 주간 목표와 월간 목표는 정성적 목표로 채워보자. 그래야 매일의 정량적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정성적 목표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실무에서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때 매해의 정책 목표는 정량적 지표로 세우지만, 4~5년 뒤에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표는 정성적 지표로 잡는다. 예를 들어 산업을 위해 100억의 예산을 추가 투입하여 100개의 벤처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면, 궁극적 목표는 해당 산업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이 되는 식이다.

  오늘의 내가 2015년의 나에게 조언을 한다면, 주간 계획은 조금 더 정성적인 측면에서 고민해 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한 경제학 3순환 기간에 통계학과 행정법을 함께 챙기지 말고 경제학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오롯이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충고했을 것이다. 급하게 서둘러봐야 사상누각이 될 뿐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3순환 강의에 치여 이해하지 못하고 놓친 개념이 많을 시기다. 혹시 정량적 목표만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자. 우리의 목표는 항상 '새로운 개념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가 되어야 한다. 100문제, 1000문제를 풀어도 제대로 된 이해를 수반하지 못한다면 시간만 축내는 공부가 된다. 반대로 단 한 문제만 풀더라도 개념을 제대로 익힌다면 의미 있는 하루가 된다. 옆 사람이 13장, 14장을 복습할 때 내가 7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도 불안에 떨지 말자. 꼭꼭 씹어 개념을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 오늘 새로 던져진 개념이 10개라면, 열 개를 모두 이해하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단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갈 수 있도록 집중하고, 흔들리지 말자. 정성적 목표를 바탕으로 공부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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