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I. 그간의 잘못된 공부법
※ 아래 내용은 <PSAT 원래 이렇게 푸는거야>에 수록된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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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 도서관이나 고시촌 독서실, 카페 등지에서 두꺼운 계산 연습 교재를 푸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계산 연습은 PSAT 시험이 최초로 도입된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공부법으로, 지금도 포털사이트에서 ‘PSAT 계산’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십 종의 교재가 나온다. 수험생들은 계산 연습을 통해 풀이 속도와 정확도의 향상을 기대한다. 학원이 제시하는 목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처럼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계산 연습을 해도 교재에 적힌 각종 공식은 익숙해지지 않고, 계산도 그다지 빨라지거나 정확해지지 않는다.
여러분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저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했을 뿐이다. 계산 연습은 대표적인 ‘잘못된 공부법’ 중 하나다. (여기서의 계산은 ‘손으로 직접 숫자를 써서 산식을 푸는 행위’, 즉 ‘필산(筆算)’을 뜻한다. 본래 ‘계산’은 필산과 암산을 통칭하는 의미이나, 본 책에서의 ‘계산’은 필산만을 의미한다)
계산 연습은 PSAT 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사칙연산(+, -, ×, ÷)을 할 줄 모르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득보다 실이 크다.
“공무원 뽑는 데 계산은 왜 시키는 거야”라는 불평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PSAT은 복잡한 계산을 시킨 적이 없다. PSAT은 자료에 대한 해석 능력과 상황에 대한 판단 능력을 평가하고, 수치에 대한 대소 비교나 증감 양상을 정확히 읽어 내는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계산이 필요한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체 문제의 20% 정도는 계산이 필요하나 상식을 벗어날 정도의 복잡한 문제는 거의 없고 나머지는 숫자가 나오더라도 눈대중이나 어림산으로 해결할 수 있다. 20%의 계산 문제 중에서도 어려운 문제는 버리면 그만이다. PSAT은 100점이 아니라 상위 20%에 드는 것이 목표임을 기억하자.
그런데도 이렇게 계산 연습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이유는 다 학원 탓인데, 일차적으로는 계산 연습이 진리인 양 가르치기 때문이며, 이차적으로는 (기출 경향에 어긋나는) 무지막지한 계산이 필요한 모의고사를 제작해 학생들이 PSAT의 본질을 오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원 모의고사는 아르바이트생 또는 연구소(?) 직원에게 소정의 대가를 지급하며 만들기에 기출 경향이나 스타일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모의고사는 기출문제와 형식만 유사할 뿐 실제로는 상당히 다른 경향을 띤다. 난이도를 적정 수준으로 맞추기 어려우니 가장 쉬운 수단인 ‘계산’을 삽입해 난도를 높인다. 마치 입법고시 PSAT이 인사혁신처 PSAT과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시험이듯, 학원 모의고사 또한 인사혁신처 PSAT과 다른 시험이다. 성심껏 만든 모의고사라도 결코 기출문제 수준에는 미칠 수 없으며, 완성도 낮은 모의고사들은 도리어 PSAT에 대한 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 풀지 않는 게 낫다.
나 또한 PSAT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문제 제작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는 선생님과 함께했다. 지금 와서 보면 기출문제 검토 과정과 매우 유사한 절차를 거쳐 문제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결코 기출문제 수준의 완성도를 가질 순 없었고 무엇보다 기출의 ‘출제 원리’와 ‘경향’을 모방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계산 연습은 왜 불필요할까? 첫째로, 기출문제 중에는 학원 교재에 나오는 것처럼 계산이 복잡한 경우가 많지 않다. 눈치 빠른 수험생들은 모의고사에 비해 기출문제에 주어지는 값이 깔끔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실제로 기출문제 검토 과정에서는 값이 너무 복잡해지지 않도록 통계 수치 등을 보정한다. (수능 주관식 문제에서 답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반면 모의고사 문제는 이러한 고민 없이 실제 데이터를 그대로 활용하여 선지를 구성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둘째로, 계산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풀이 속도가 유의미하게 개선되지 않는다. 필산은 근본적으로 속도에 한계가 존재한다. 손의 움직임에 한계가 있다 보니 생각의 속도도 그 수준에서 제한된다. 손을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과 차별될 정도의 속도를 발휘하기 어렵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계산 문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는 정도인데, 계산 연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자신감은 얻을 수 있다.
셋째로, 계산 문제의 출제 비중이 높지 않다. 2023년 기출문제 중 계산 문제는 자료해석에서 10문제, 상황판단에서 11문제가 출제되었다. 전체 80문제의 25% 정도인데, 일부 버려야 하는 고난도 문제 6~7개와 계산 연습 없이도 손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제외하면 계산 연습의 효용은 매우 떨어진다. 두 과목 통틀어 겨우 3~4개에 불과한 ‘조금 까다로운 계산 문제’에 대비하고자 그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셈이다.
계산 연습은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을 넘어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첫째로, 무작정 계산하려는 습관이 생긴다. 계산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숫자가 등장하는 문제만 보면 무작정 계산부터 하려는 습성을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필산 속도에는 개인차가 크지 않아서, 득달같이 문제에 달려드는 게 풀이 시간을 단축하는 유일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계산 연습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가진 일부 수험생들은 계산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 문제임을 알면서도 계산을 고집하기도 한다. ‘고민보다 GO’ 느낌인데, 현명하지 못하다. 바로 옆에 징검다리를 두고도 굳이 헤엄쳐 강을 건너는 꼴이다. ‘무조건 계산한다’는 맹목적 전략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고, 출제위원이 요구한 적도 없는 계산을 하게 한다.
둘째로, 계산 연습에 막대한 시간과 체력을 투입한 탓에 다른 과목을 준비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면 그만큼 공부 기간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다. 2차 시험도 남아 있는데 1차 시험에 과도한 에너지를 투여하는 건 장거리 레이스에서 초반에 전력 질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전략이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훌륭한 공무원인 것처럼,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훌륭한 공무원이 될 자격도 생긴다.
셋째로, 풀지 말아야 할 문제에 손을 대게 된다. 통상 자료해석, 상황판단에서 버려야 하는 문제는 대부분 계산 문제다. 계산이 복잡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제자 입장에서도 문제 난도를 높이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 계산을 넣는 것이다. 이때 맹목적인 계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도망쳐야 하는 문제와 불필요한 싸움을 벌인다. 그 결과 시간이 부족해 정작 풀기만 해도 맞혔을 쉬운 문제를 놓친다. PSAT은 100점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게끔 설계한 데다 문제 난이도에 상관없이 배점이 동일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는 건너뛰는 전략이 필요하다.
계산이 전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계산해야 하는 선지와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비중이 생각보다 낮고, .. (이하 내용은 도서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
브런치북 <PSAT 공부가 아닌 훈련이다>가 <PSAT 원래 이렇게 푸는거야>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2023년 기출문제 분석을 더했고, 본문의 많은 내용을 수정보완했으며 기존 브런치북에 싣지 못했던 내용도 더했습니다. 무엇보다 현직 사무관 10여명의 감수를 통해 설명이 모호했던 부분을 명료하게 다듬었습니다. 이제 종이책으로 편하게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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