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채원 Nov 09. 2021

상실의 시대 혹은 타인의 고통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노래가 유독 사무치는 까닭은 공간과 시간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나라는 존재만 상실이라는 경험의 투영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변하지 않은 세계의 질서에서 홀로 변화한 나만 우뚝 서야한다는 것, 그렇게 나는 상실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이내 고독한 존재자가 된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어떤 철학자는 사랑이란 저변의 수많은 타자들 가운데 나를 찾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랑의 클라이막스는 내가 비로소 너가 되는 순간일 것이고, 사랑 가운데 다툼은 너를 나로 만들려고 할 때 일어날 것이며, 노래의 말처럼 사랑의 비극이란 너는 사실 내가 아니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변하지 않는 세상 가운데 이별이라는 상실을 경험한 존재자에게만 찾아오는 변화, 그 외로움은 너무 잔인하다. 

 이토록 잔인한 변화가 휘몰아칠 때, 나라는 존재자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어디에서 위로를 얻고, 다시금 홀로 살아갈 용기를 낼 것인가. 상실은 그저 피할 수 없는 나의 숙명과도 같은 것일까. 존재자는 변화라는 칼에 베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세상에 굴복하며 스스로 품어낸 꽃은 이내 꺾여야 하는 것인가.

 만일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 변하는 것이고, 변하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쓸쓸한 그 마음이 좀 괜찮아질까. 이를테면, 만남은 헤어짐의 또 다른 면모이고, 헤어짐은 만남의 또 다른 변주라면 말이다. 더 나아가 단절의 양상은 사실 모두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 보이는 모습은 사실 단절의 연속이라면, 또한 우리의 만남과 이별이 사실 모두 다 같은 것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일 뿐이라면, 이것이 상실을 경험한 존재자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존재자 각각은 개별일지라도 그 존재 일반은 보편이다. 따라서 우리가 개별적 존재일 때 그 유한함으로 인하여 만남과 헤어짐 혹은 획득과 상실을 교차로 경험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지만 개별자들이 변하지 않는 보편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즉 어떤 영혼이 되었을 때, 사실은 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 깨달음의 순간이 존재자에게 있어서 만남의 충만이 가장 고양되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 직전에 우리는 가장 큰 상실을 체험한다. 바로 죽음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절대적인 잔인함, 그 어느 누구라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다. 이러한 세계 내에서의 필연적인 상실은 이내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영혼의 충만함으로 위로된다. 유한하고도 물체적인 것들이 소멸하고 나면 무한하고도 정신적인 것들이 그 비어버린 공간을 가득 채운다. 마치 만남과 헤어짐을 감히 구획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변하지 않는, 그래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세계 가운데 상실의 경험으로 변해버린 나라는 존재자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절대적인 상실 뒤에 올 영혼의 충만함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자기 자신을 다독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더 나아가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이라는 절대적 상실에 기어코 돌진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든 텅 비어버린 그 마음을 부여잡고 이 세상에서 끝끝내 살아가야 할 터인데, 나라는 존재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세계의 잔인함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휘몰아침에 넘어지고 무너지다가 가장 절대적인 상실인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고 생을 끝내버리면 나의 생은 도대체 무엇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뇌의 소용돌이가 멎을 즈음, 비죽 새어나오는 자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사실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서로 다르지만 결국 영혼이라는 존재 일반으로 수렴할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단절되어 보이는 너라는 타자에게 용기 내어 악수를 건네는 것, 그리고 고통 속의 타자가 내미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기어이 부여잡고 함께 나아가보는 것,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사이의 잔인한 단절들을 억지로라도 메꿔내어 함께 이 상실의 고통을 연대 해 보는 것이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순간, 참 신기하게도 그 아픔은 점점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서히 고독한 마음에 스며드는 위로가 된다.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주는 연대의 절정은 절대 변하지 않는 공고한 세계에서 상실이라는 변화로 인한 우리의 고통을 잠시 나마 멈추게 하리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사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