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공부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의문들에 나름의 답을 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세상은 왜 이 지경이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따위에 관한 물음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철학은 가지고 있는 물음들에 답을 할 수 있게 해주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자신 있게 믿고 있는 것들을 마구 무너뜨렸다. 그래서 점점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이윽고 아,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더더욱 없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좋게 이야기하면 탁월한 관조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이를 뒤집어 보자면, 그저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여전히 세상은 왜 이 지경이고 나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머리를 싸매는 형편없는 소시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철학을 통해 그동안 고민해오던 의문들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는, 꽤나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삶을 꿈꿨지만 공부의 과정에 나아갈수록 점점 입을 다물게 된다. 부실한 신념으로 그동안 이렇다 저렇다 답을 내렸던 것들이 사실 일종의 월권을 행사한 것임을 깨닫자 너무 낯 뜨거워서 뭐라 할 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내 생각을 밝히는 문장 한 마디 내뱉는 것조차 벅찬데 자기 생각과 해석을 글과 말로 음악과 그림으로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들의 표현은 문학적 혹은 예술적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설픈 질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들이 얼마나 체계 없이 자기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지 아냐며 그들에 의해 규정된 세계와 사유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그들의 감상이 너무 피상적이고 어설프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이 한 가지 흠결이라도 있다면 이내 드러낼 수 없는 나에게는 지나치게 자아에 도취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가 문득 나 같은 사람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과 저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철학자와 시인이 만난다면 나의 개인적 서사와 세계를 향한 단순하고 거대한 물음이 만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사실 나의 삶과 동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굉장히 울림 있는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단계에선 알기 어려울 것 같다. 철학자가 되고 싶은 것은 맞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철학자라고 불릴만한 단계는 절대 아니며 현재의 나의 능력과 열의를 비추어 보았을 때, 앞으로 내가 철학자가 될 수 있을지 전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들자 나는 미래에 대해 꿈꾸는 일도 확정할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논하는 것 같아서 참으로 어려워졌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누군가 물어볼 때 어떤 대답도 할 수 있던 유년 시절이 더더욱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되는 것은 철학자와 시인이 언젠가 만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네 믿음은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걸 너 스스로 말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분명 있겠지만 좌절할 때 좌절하더라도 이 희망만큼은 꼭 가지고 있고 싶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나 같은 사람은 참 미련하고 답답한 존재이겠지만 이 양자가 만나는 그 곳에서는 우리는 왜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모습이었어야 했는지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