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시나 시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었다. 근데 요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좀 더 정확히는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정제되어있고, 진솔하게 다가오는 표현들이 좋고 그 안에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 시가 좋다. 박노해의 시는 그렇다. 그의 작품은 마음을 쿡쿡 찌른다. 시 하나하나에 노동자들의 삶과 마음이 담겨있다.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에 이 책으로 발제를 해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 알지도 못한 채로 떠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과 노동자, 노동환경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그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주류인 과반에 소속되어 대학 시절을 보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적절한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지원하다보니 문과대에 가게됐고, 학부로 모집하던 시절 무작위로 배치된 반이 그랬다. 과반에서는 꽤 자주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참여를 했으며, 여름이면 농촌으로 농활을 갔다. 새내기 시절, 나는 선배들에게 이끌려 두어번 그런 행사에 참여하다가, 나중엔 가지 않았다.
과반 내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개념없는 사람인듯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과반 내 '주류'를 이루는 운동권이 비운동권을 억압하는 것 같아 싫었다. 억압받는 자의 목소리를 낸다면서 결국 또 누군가를 억압하는게 모순 아닌가. 제대로 된 노동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도 소꿉장난 같았고, 지적허영에 물든 엘리트주의 같기도 했다. 여름방학때 다녀온 농활도 부촌으로 갔다는 소리에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사실 이런 생각 자체가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 자의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무관심을 택했다. 전공인 사회학에서 사회운도조직론이니, 사회계층론이니, 노동사회학 따위의 수업들도 들었지만 이론을 피상적으로 이해만 할 뿐 어느 하나도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YH무역농성사건 같은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노동 관련 사건들의 기사를 읽거나 할 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살고 싶고, 이데올로기니 뭐니 하는 것들도 그냥 피곤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참 신기하다. 길어봤자 몇 백 단어로 사람의 마음을 울림을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마음이 아리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나의 행동을, 더 나아가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노동현실을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온 나의 태도가 최선은 아님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렇게 그의 시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노동의 새벽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시 '하늘'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