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내가 제주도에 살게 될지 알았을까? 전혀 아니었다. 서울 태생은 아니더라도, 평생을 그 근방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언니가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있는걸 보면서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보고 싶을텐데 어떻게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지 언니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만 할뿐이었다. 한 공공기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언젠가 순환근무에 따라 제주도에 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막연히 그래도 그 전에 어디든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취직 당시에는 찬물 더운물 따지기 전에, 취준생이 나에겐 취직이 급했으니 언젠가는 제주도에 간다는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제주도에 와있다. 그리고 이제는 큰 문제다.
제주에서 근무를 한다하면, 사람들의 첫 반응은 다들 '부럽다'이다. 남들은 큰돈 들여가며, 제주 한달살이를 한다는데 너는 돈을 벌면서 제주에서 살 수 있다니 얼마나 좋냐는 것이다. "제주 여행을 하는 것과 사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애써 그들의 환상을 깨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나는 "하하.. 그런가요" 하면서 말끝을 흐리곤 한다. 곧 이어지곤 하는 "근데 제주에선 얼마나 있어야 하는거야? 언제 올라오는건데?" 하는 질문에는 더더욱.
나도 예전에는 제주도 여행을 가는 사람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등을 보면 많이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제주도가 본사인 회사에 들어오면서 제주 여행에 대한 감흥이 없어졌는데, 제주에 살게 되니 없던 감흥은 더 없어졌다. 취직 전, 제주 여행은 너무나도 설레고 제주에서 어딜가도 즐거웠는데 왜 나에게 그런 감정이 없어졌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며 여행의 설렘이나 행복감은 어디서 올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분명 여행은 '일상 탈출'의 의미가 클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 보내던 일상에서 잠시 탈출하여, 평소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경험하며 시야를 넓히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제주는 이제 나에게 늘 영위하고, 리프레시하기 위해선 오히려 탈출해야 하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주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제주의 야자수를 보며 설렘을 느끼듯,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단풍을 이국적이고 낯선 것처럼 느낀다.(제주에서는 가을 단풍을 보기가 힘들다.)
물론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시골동네 골목 하나도 예쁜 느낌. 회사 점심시간에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도 그림같은 바다를 볼 수 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와는 다르게, 순간순간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는 소중함보다,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더 크게 느끼는 법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