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습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eudomin Oct 26. 2017

내분비내과, A longitudinal study

실습 일기

고등학교 때부터 생물 시간에서 호르몬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어렴풋하게 내분비내과가 어떤 것들에 대하여 진료하는 과인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때 당시에는 내분비내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많다는 환상을 가지고, 정확히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환자가 많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은 내분비내과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때보다 잘 알고 있고, 한 학번에서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과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른 과들과 다르게, 내분비내과는 본과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느낌이 달라지는 과이다. 1학년 내분비계통, 2학년 내분비학, 3학년 내분비내과 실습, 그리고 그 후는 임상의학종합평가나 국가고시로 나뉘게 된다.


본과 1학년. 내분비계통. 해부를 하지 않는 과목이란 사실에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두뇌에서 행복 회로를 돌리기 시작한다. 선배들은 학점이 적은 과목이지만 시험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시간표를 보니 1주일 정도의 짧은 과목이고, 예전의 근육골격계통이나 기초신경에 비하면 몇 배나 적다. 족보도 얇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시험공부를 하면서 호르몬의 체계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외우기만 하면 상당 부분 해결되었던 해부학과 달리 이해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고, 시험장에 가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시험은 헷갈리는 개념들을 모두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주관식으로 나오게 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을 망친다. 이때쯤은 내분비내과에서는 하는 일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많다고 느끼게 되고, 나는 범접할 수 없는 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과 2학년. 내분비학. 본과 1학년의 악몽이 떠오르게 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다르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와 비슷하게 1주 반 정도이다. 국가고시에는 당뇨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은 빈도로 나오게 되지만, 학교 시험은 고른 비율로 나오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고루 알아야 한다. 본과 1학년 때에는 무기질이 이렇게 어려운 부분인지 몰랐다. Pseudopseudohypoparathyroidism은 대체 뭐하는 병인가. 국가고시 문제집에는 출제 빈도가 낮기 때문에 나오지 않지만 변별력을 중요시하는 학교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외워야 한다. 학점이 적은 내분비내과보다 중요한 과목들이 있어 대사증후군과 당뇨, 갑상선을 믿고 적당히 공부를 하고 들어가게 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시험을 망친다. 본과 1학년 때 본과 3,4학년 선배들이 내분비내과 과목이 학교 시험이 어렵다는 말을 해 준 사실이 그제야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미 내분비내과를 가려면 내과 레지던트 후 내분비내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내과는 공부할 게 많고 각 과에서도 환자의 범위가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과 3학년. 실습.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입원환자의 진단명은 당뇨가 많다. 우리나라의 당뇨 유병률이 그렇게 높았던가. 작년에 그렇게 괴롭히던 무기질 이상 환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교수님께서 무엇이 제일 어렵냐고 여쭤보셨을 때, 용기 내어 무기질이라고 답했더니 자신도 그것은 어렵다고 하셨고, 학생 수준에서는 제일 전형적인 두 가지만 알면 된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그런데 당뇨 약이 너무 많다. 작년에는 당뇨 약에 대해 모두 설명할 시간이 없으셔서 고통받지 않았던 것이었구나... 그래도 이번에는 내분비내과 실습 5일만 지나가면 행복해진다. 발표는 다른 과목들에 비해 조금 힘든 편이긴 하지만, 제일 힘들진 않았으니까 만족한다. 적당히 버티고, 나간다. 실습은 늘 그렇다. 본과 1, 2학년에 비해 양이 적어 보인다고? 그때는 주말까지 공부했고, 시험과 재시험이라는 엔딩이 있었지만, 본과 3학년은 5일만 버티고 나가면 끝이다.


임상종합평가. 국가고시. 아직 국가고시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출문제들이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의외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이 보이지만, 처음 보면 틀릴 수밖에 없는 문제 역시 보인다. 그래도 예전에 담금질을 많이 (당)해서 좋게 넘어갈 수 있다. 사실 임종이나 국시 준비에 내분비내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주기는 힘들다. 아무리 어렵게 나와도 60%는 넘을 것 같다. 그래도 고득점을 하기는 어려운 과목이다. 본과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기 애매한 과목이다. 까다롭다.


P.S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한 지 무려 4개월 가까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아 이건 망한 주제인데...'라고 생각하면서 끝맺을 때도 있고, 정말 솔직한 감정을 담았기 때문에 그나마 조회수가 높음을 예상한 주제도 있었다. 통계분석을 돌릴 만큼 표본이 나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아쉽게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Pancreatic canc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