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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Oct 25. 2017

Pancreatic cancer

실습 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란 영화가 개봉했다. 개봉하기 전, 원작 소설을 읽었다. 물론 할인을 많이 받고 e-book으로 6700원 정도의 가격에 보았다. 가난한 대학생이란 것을 미리 말하고 가야 앞으로 돈 앞에서 알뜰한, 어쩌면 구질구질한 면모를 보여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로 돌아가면, 췌장, 의대생이라면 너무 많이 들어본 말, 일반인이라면 무슨 장기인지 잘 모를 수도 있는 말이 들어간다. 쉽게 말하면 '이자'고, '너의 이자를 먹고 싶어'라고 번역할 수 있었는데, 췌장으로 번역한 뜻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소설의 제목과 장르만 보고 대충 줄거리를 그렸다. 췌장, 멜로. 보통 이자라고 할 텐데, 췌장이라고 굳이 한 걸 보면, 췌장이 주로 들어가는 질환명은 췌장암. 췌장염, 이자염 둘 다 쓰는 것은 보았지만 이자암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주요 인물이 췌장암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췌장을 먹어주고 싶은 연인의 마음 정도로 예상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보면 내가 어느 정도 맞았는지 알 수 있지만, 예상한 문장에서 한 구절 빼고 다 맞았다. 


췌장암을 그렇게 쉽게 예상한 이유는? 췌장암과 췌장염은 생존율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작년 췌장암 수업을 들어오신 교수님께서는 췌장암에 대해서 우리의 족보가 달라질 것은 없고, 필드에 진출해서도 췌장암은 완치율이 예나 지금이나 아주 낮은 것만 알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멜로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불치병에 걸린(일찍 죽게 되는) 주요 등장인물, 췌장암은 적격인 병이다. 5년 생존율이 5~8%, 진단 후 평균 수명이 반년에서 1년 정도 정도 되는 병이다. 


반년에서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이유는 췌장 자체의 특성이 있다. 몸 깊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증상이 있어도 췌장 특이의 증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느낀다. 췌장의 머리 쪽에 초기 암이 있으면 황달이 나타나고, 이 경우는 CT를 찍어서 조기 진단이 가능하나, 황달 외에는 비특이적인 복통, 등 쪽의 통증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감별하려고 시간을 소모하거나 포기하다가 진단 시기를 놓치게 된다. 췌장은 조직 자체가 주변 장기와 많이 맞닿아 있고 림프절도 많아서, 주위 조직과 장기를 자주 침범하게 된다.


언론에서 말하는 췌장암은 ductal adenocarcinoma(체관 선암) 외에도 neuroendocrine tumor(glucagonoma, insulinoma), (심지어는) ampulla of Vater cancer가 있다. Ampulla of Vater cancer는 정확하게 췌장암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병이지만,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를 한 적이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 외의 여러 가십들이 있는 질병이다. 15세 소년이 췌장암을 진단하는 키트를 개발한 뉴스가 여러 포털사이트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키트 상의 물질이 췌장암 환자와 일반인에서 농도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키트는 무의미하다. 위험 요소 중 하나가 담배이다. 담배를 시작하지 않거나, 끊을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실습 중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PPPD라고 하는 보통 5시간 이상 걸리는 큰 수술을 진행하게 된다. 외과수술을 참관하다 보면 Foley catheter를 넣는 수술은 긴 수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PPPD 역시 Foley catheter를 넣고 수술을 진행하였다. 췌장암 환자 중 수술을 하는 환자는 정말 운이 좋은 환자들이다. 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기가 낮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완치가 가능함을 의미하고, 조직 검사에서 림프절 전이 소견도 없으면 완치의 가능성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많은 논문들에서 수술을 통한 낮은 stage의 췌장암을 완치하는 것이 더 가능해지는 것을 다루나, 아직 높은 stage에서는 갈 길이 먼 질병이다.


잘 생각해 보면 췌장은 자신을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고마운 장기이다. 고혈당을 방지하기 위해 인슐린이 나오고, 저혈당을 방지하기 위해 글루카곤이 나오며, 소화 효소들을 다른 장기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종류로 분비한다. 환자들이 췌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는 보통 당뇨에 걸렸을 때 인슐린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끼게 되고, 가끔 급성 췌장염이나 만성 췌장염을 겪고 깨닫는다. 한편, 이런 질병이 걸렸을 때에도 인간은 스스로 사는 법을 배웠다. 췌장암은 진행도 빠르고 예후도 좋지 않아 아직 정복되지 않은 질병이다. 의사가 되고 나서도, 췌장암을 치료하는 것은 꺼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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