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일기
내가 병원에서 본 가장 강인한 사람은 소아과에서의 부모이다. 다른 분과에서라면 회진 때 '어, OOO 환자/보호자 어디 있지?'라고 할 법도 한데, 소아과에서는 여느 때보다 회진이 조금 더 빨라지거나 늦어져도 그 자리 그대로 부모가 있다. 특히 중환자실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오전 회진 때 보호자들은 중환자실 앞에서 언제 오실지 모를 교수님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교수님과의 대화는 단 몇 분. 그 시간을 위해서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소아과 교수님께서 실습 초반 한 말씀이다. "환자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 면담을 하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가야 한다. 잘 모르고 갔다가는 오히려 환자 부모에게 배울 것이다." 이처럼, 소아과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걸린 질병에 대해서 해박하다. 가끔씩은 논문을 찾아온다고도 한다. 소아정신과 교수님께서는 수업 중 "ASD를 처음 들어보는 줄임말로 부르더라고요. 아마 모임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아요."라고 하는 만큼 그 병에 대한 모임을 만들어 지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부모들끼리 정신적인 지지도 서로 해 주는 경우도 있다. 혈액암 병동을 예로 들면, 성인 병동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데 비해 소아 혈액암 환자가 많은 병동에는 소아 환자들은 뛰어다니고, 부모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같이 도시락을 먹으면서 대화하고, 자기 아이의 병으로 인한 심적 고통을 이겨낸다고 한다.
회진을 끝나고 환아에 대해서 공부할 시간이 있을 때, 그 느낌은 서로 다르게 마련이지만, 소아과 장기 입원 환자에 대한 느낌은 두 가지로 얼추 비슷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너무 길게 입원해서 불쌍하다."와 "그 아이의 어머니(아버지)는 대단하다. 매 회진 시간 그 자리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니."라는 두 가지의 느낌이다. 매일 회진을 도는 것이 끝나며 소아과 실습을 마무리할 때, 오히려 환아의 얼굴보다 부모의 얼굴이 기억이 나는 경우도 있었던 경우도 있다.
외래에서도 부모님들은 환아의 건강에 대해서 많은 고민거리를 늘어놓으신다. 그래서 소아과의 외래 참관은 늘 지연이었고, 인계장에도 외래가 정말 길었다는 묘사들이 있었다. 인계장을 읽으면서 나는 운이 좋기 때문에 일찍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곤 했지만 외래 접수가 마감된 후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환자가 외래를 오래 보는 것이 학생의 입장에서는 다행일 때가 많다. 간혹 외래를 너무 짧게 보는 환자에 대해서는 과연 환자가 외래의 내용을 이해했을지, 집에 가서 의사가 권하는 행동들을 충분히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설명이 어렵거나 용어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용어들이 있어, 어느 정도 의사와 환자 간의 소통이 필요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소아과에서는 너무 과다한 걸 교수님께 바란다는 생각을 하였다. '얘가 그저께 갑자기 기침을 조금 하던데 왜 그런가요?'같은, 정확히 알 수 없고 애매한 질문들을 많이 하거나, 가벼운 감기를 앓고 있어도 선행 질환이 있기 때문에 입원의 상황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그런 장면들에서 설명을 잘 해 주는 것이 의사의 몫이지만, 많은 부모들은 환아의 증상에 대해서 걱정을 오래 했기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다. 어떤 교수님께서는 가벼운 감기나 증상이 있더라도 선행하는 질환이 심하기 때문에 최악을 가정하고 넘겨짚게 되며, 비의학적인 상상을 하며 과다하게 걱정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하셨고, 그런 점이 비의학적으로 긍정적인 상상을 하는 다른 과의 외래와 많이 다른 상황이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너도 부모가 되면 그럴걸"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되면 '나'보다 '나의 자식'이 소중해진다고 하는데, 이걸 미리 배운 느낌이다.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소아과 실습을 돌면서 소아과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만 한 게 아니라 부모가 되는 연습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부모가 되는 연습이 필요 없고, 부모가 되는 순간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복잡해진 세상 속에서 부모가 되는 연습의 중요성이 높아져 이런 방식으로라도 연습의 기회를 받아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