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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실습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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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Nov 11. 2017

올해 마지막 외래 참관

실습 일기

올해 실습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실습 종료일까지 D-day를 신나게 셌지만, 마지막 외래 일정은 셀 겨를이 없었다. 전일일까, 아니면 당일 새벽일까, 다가올 일정이 올해 마지막 외래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일 아침, 마지막 외래라는 사실은 잊고, 오늘 외래가 있으니까 정신 차려야겠다고만 생각하고 등교했다. 친절한 레지던트 선생님과 펠로우 선생님께서 한번 더 확인시켜 주셨다.


교수님께서는 30분 뒤에 있을 외래 시작을 앞두고 회진에 뛰어오셨다. 회진을 보시기 전, 금일의 외래 환자 명수를 확인한 뒤, 외래 환자수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확인하고 안심하셨다. 하지만 회진 중 외래 환자가 급하게 기다린다는 콜을 받으셨다. 다행히, 남은 회진 환자는 한 명이었고, 5분만요, 라는 지켜지지 않을 짧은 답을 하시고 회진을 성공적으로 마치셨다. 나는 외래 참관을 위해 교수님의 뒤를 따라야 했고, 거의 뛰어가시는 교수님을 쫒아가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늘 그랬듯이, 외래는 시작되었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는 생각보다 별 것 아닌 이유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고, 어쩌면 교수님과 환자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남은 환자 수가 적어 다른 환자보다 3배 이상의 시간을 소요하고도 큰 지장 없이 진료를 끝낼 수 있었다. 외래를 참관하다 보면 제삼자가 보았을 때 큰 이상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환자 본인은 많은 걱정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단지 그런 환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회진을 끝내면서 외래까지 허겁지겁 달려와야 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씩 웃으시며 다음 환자를 부르셨다.


한 해 동안 외래의 경험들을 뒤돌아보았다.


많은 티칭이 있었고, 그중에는 인생 수업도 많았다(그러고 보니 다음 글을 일요일 즈음 외래 스페셜로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티칭들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배우는, 거저먹는 지식들이었으나, 의학을 더 많이 배우고 싶다면 공부는 필수적이었다. 공부를 통해서 질문을 하거나, EMR의 처방을 보면서 무슨 약제를 병원에서 주로 쓰는지 알 수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 대해 더 설명하면, EMR에서는 성분명만이 나오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고 외래에 들어간다면 무슨 약을 처방하는지 대부분 알 수 없어 진료 내내 방황하나, 공부를 했을 경우에는 전체적인 진료 과정을 이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다시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어떤 교수님들은, 외래를 의학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실제 진료 장면에 대해 익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런 교수님의 외래를 들어갈 때는 무슨 병을 어떻게 처방을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것보다 환자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촉박한 외래 시간 속에서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묻는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의사와 환자가 바라지 않았던 상황들(조직 검사 결과 등)에 대해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하는지 경청하고 생각할 기회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첫 외래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첫 주에 실습을 담당하셨던 교수님은 학생의 외래 참관을 바라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다. 두 번째 주 첫 외래 경험이 있었다. 교수님 뒤에 생애 처음으로 앉아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있고, 환자가 오고 갈 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교수님의 모든 진료 과정을 집중해서 쳐다보며, 혹시 진료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있었다. 첫 외래 때나 지금이나 외래의 시간은 참 느리게 가고, 환자들은 외래 마감 전까지 계속 오는 양상을 보인다. 처음에는 교수님의 전문적인 대사에 역시 교수님이라고 생각했고, 1시간 뒤 같은 대사가 반복되는 것을 들으며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교수님만의 노하우를 배웠다고 느꼈다. 요즘 교수님의 전문적인 대사를 들으면, 오늘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기 실습의 분과들이 상대적으로 환자 1명당 외래 시간이 길었고, 실습 중반부로 들어가면서 환자 1명당 외래 시간이 적은 분과를 돌게 되었다. 외래 시간이 적은 분과들에서는 환자당 시간이 3분, 혹은 그 이하, 우스갯소리로 '2분 진료'라고 말하는데, 참관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도록 핵심적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고, 족보는 의과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습 후기 분과 실습 중 좁은 범위의 환자가 오래 병원에 다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환자의 얼굴만 보고 질병명을 기억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외래에서 족보 외에 다른 무언가가 적용되는 과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외래 참관을 하면서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교수님께서 12시에 학생은 식사를 하라고 보내 주셨고,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본과 3학년 실습 분과들의 외래를 참관할 기회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했다. 오후 외래가 지연되어 저녁 시간이 끝없이 늦어질 때, 올해의 외래 참관 스케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올해 외래 참관 시간 동안 배움이 많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후회감을 느끼게 되었다. 1년을 마무리할 때 후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교수님들, 특히 일부 환자가 바라지 않는 학생의 외래 참관을 허락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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