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일기
평화롭게 흘러가기로 유명한 알레르기내과 실습이 진행되었다. 입원환자 목록을 알레르기내과 전체로 보아도 얼마 되지 않아 매일 아침 회진이 두렵지 않았다. 소아의 알레르기는 예전부터 꽤 많이 배웠고, 호소하는 환자도 많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아는 소아알레르기과에서 전담하기 때문에 성인의 경우에만 신경을 쓰면 되는 과이다. 그런 점도 있고,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평소에 분과에 해당하는 주위 사람이 심한 고통을 받는 모습을 있는가,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어렵게 나오는 과인가를 실습 전 고민하게 되는데, 알레르기내과는 둘 다 아니었다. 환절기마다 비염으로 콧물을 훌쩍이는 사람이 있었지만, 죽을병은 아니고, conservative care를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일 증상이 가벼운 질병은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사실 비염은 알레르기성 비염, 알레르기성이 아닌 비염, 이 둘이 섞인 비염으로 나누어지긴 하지만, 알레르기성과 섞인 비염을 구분하기는 애매한 경우가 많다. 비염 약은 흔한 만큼 시험에도 자주 나온다.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는 입장에서 말하면 비염 약은 정말 잘 낫고, 그렇기 때문에 금방 잊게 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는 동안 '알레르기성이 아닌 비염'이 섞이게 되지 않도록 몸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조금 귀찮지만, 그래도 환자가 바라는 '증상 호전'을 빨리 이룰 수 있는 병이다. 스테로이드를 코에 매일 뿌리면 증상 조절에 효과적이면서 5년 동안 투여한 후 코 조직 생검에서도 조직의 위축이나 변화 소견은 없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경구용 약(항히스타민제)으로 얻은 깨끗한 코 덕분에 매일 뿌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런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예후가 좋은 병이다.
조금 위로 올라가면 천식이나 Adverse drug reaction이 있다. 두 병은 멀리 떨어져 있는 병이지만, 1주일간의 실습을 돌아봤을 때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병이었다. Adverse drug reaction은 약물의 부가적 작용으로 직역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약물 효과 모두를 의미한다. 천식은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흡입기 등을 투여하면서 관리하면 충분히 정상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다. 천식의 약물 투여 기준은 연구가 많이 된 분야라 복잡한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나올 때 매번 조금씩 당황한다.
생명에 직결되는 병은 TEN(toxic epidermal necrolysis), 아나필락시스가 있다. 죽을 수 있는 병이고, 그래서 국가고시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이런 생명과 직결되는 병으로 알레르기내과에 입원한 환자는 실습 시작 시 한 명이었고, 일주일 내내 그랬다. 이런 무서운 질환 중 아나필락시스 같은 경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람에게서 발병하기 때문에, 보통 에피펜을 들고 다니고 이를 어떻게 투여하는지 아는 것이 의사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허벅지에 생각보다 푹 찔러 넣어야 하고, 1회용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해야 한다. 교수님께서는 환자들이 바지를 벗을 시간도 없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래서 바지의 가격에 대한 걱정을 할 새도 없이 주사하게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당황하는 순간 사망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조영제 아나필락시스는 뜻하지 않게 뉴스에서 접하곤 한다. 교수님께서는 조영제 알레르기에 다른 과에서 무감하게 느끼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추가적으로, 미리 팔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검사하는 식으로 알려지고 있는 풍조에 대해서도 현재의 가이드라인에서 미리 검사를 하는 방법이 이득이 없다는 정보를 주는 것과 반대되는 현상이라고 하셨다.
결국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싫어할 수밖에 없는 밋밋한 글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중에 알레르기 내과의 기억에서 SJS/TEN을 잊어버리고 살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다. 알레르기내과가 외래환자 위주로 진행되는 분과라고 교수님들도 소개를 해 주시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내용만 기억하는 인간의 특성상 '위주'가 '만'으로 바뀌게 되고, 나중에는 알레르기내과에 입원환자가 있었냐며 새로워하는 모습의 미래를 미리 차단하고 싶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내용은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의사가 되려면 꼭 필요한 내용들은 미래의 내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