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연말연시

유령도시 마드리드를 휩쓰는 엘 고르도(El Gordo)와 동방박사의 날

어느덧 다시 연말이 되었고, 크리스마스도 지났다.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의 연말연시는 서울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가장 큰 특징은 거리에 아무도 없다는 것.

여름과 마찬가지로, 유령도시가 되는 마드리드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인 만큼 크리스마스/새해 이브(Nochebuena/Nochevieja) 모든 가게들이 오전만 영업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다.

식당은 평소 가격보다 더 비싼 특별 메뉴만 서빙

대중교통 또한 오후 9시 정도부터 서비스를 중단하며 크리스마스/새해 대중교통 서비스는 평소보다 2시간 늦은 8시부터 시작하며, 심지어 크리스마스/새해 이브(nochebuena와 nochevieja)에 택시요금은 세 배 할증이 붙는다!

이동도 불편하고, 외식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24일/31일은 대부분의 회사가 쉬기 때문에 거리에는 관광객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산타 대신 찾아오는 푸짐한 엘 고르도(El Gordo)!

스페인의 크리스마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은 역시 크리스마스 복권, 엘 고르도(El Gordo).

크리스마스를 약 3개월 앞둔 8월 말/9월부터 이미 판매를 시작하는 이 복권의 공식 명칭은 무미건조하게 ‘크리스마스 복권(Lotería de Navidad)’이지만, 복권의 1등을 부르는 명칭인 엘 고르도(El Gordo)로 다들 부른다.

엘 고르도에 해당되는 번호를 산 170명에게 4백만 유로를 나눠주니까, 한 사람당 23,000 유로(약 3천만 원)의 상금이 나오는 셈.

한 개의 번호에 여러 명이 배정되는 구조 자체가 ‘한 명의 우승자’를 뽑기보다는 명절을 맞이해서 다 같이 행복하게 상금을 나눠갖는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는 것도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v=EG7mfKJCIcE&feature=emb_title​

왕립 극장(Teatro Real)에서, 산 일데폰소 학교(Colegio de San Ildefonso)의 학생들이 추첨 공을 받아 들고 당첨번호와 상금을 읊는 추첨 행사도 매우 유명해서 아침에 생방송으로 치러지는 추첨을 모두가 지켜보곤 한다.

스페인의 아이들은 선물을 많이도 받는다

원래 스페인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동방박사의 날인 1월 6일에 동방박사 셋(Tres Reyes Magos)이 주는 선물을 받았다.

각각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을 상징한다곤 하는데....

지금은 산타클로스(Papá Noel)까지 가세해서 12/25일과 1/6일, 두 차례 선물을 받는다. 부럽다.

어쨌든 스페인의 전통 기념일이니 각지에서 동방 박사의 날을 기념하는 퍼레이드(cabalgata)를 하는데 마드리드는 Paseo de Castellana를 따라 온갖 회사들의 퍼레이드카와 함께 동방박사가 아이들을 만난다. 이들은 퍼레이드 내내 아이들에게 사탕을 던지고(!) 시청 광장(Plaza de Cibeles)에서 마드리드 시장이 동방박사 3인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도 재현되는 보이지 않는 아시아인(Invisible Minority)

또, 동방박사의 날에는 로스콘(Roscon de Reyes)이라는, 보기만 해도 살찔 것 같은 빵을 나눠먹는 전통도 있다.

거대한 크림버거처럼 생겼다.

거대한 빵을 피자 조각처럼 잘라서 온 가족이 나눠먹는데, 중간 크림층에는 작은 천사 인형과 콩 모양 장식품이 몰래 들어가 있다. 추첨을 위한 것인데, 천사 인형을 뽑으면 그 해 운이 좋은 것이고 콩 모양 장식품을 뽑으면 다음 해 로스콘을 사야 하는 것....

새해에는 포도도 열두 알 삼키고, 며칠 뒤엔 로스콘도 먹어야 하고,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은 연말연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