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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Apr 30. 2022

30대 중반, 남은 한쪽 눈에도 백내장이 왔다.

'수술 잘 끝났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오른눈에 백내장이 들어서고, 수술 직후 망막박리가 생긴 뒤 나는 타지 생활을 마무리 짓고 귀국하기로 했다. 시야를 잃을 뻔한 급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현지에서 즉각적인 해결책을 받지 못한 채 결국 14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서야 한국의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노동집약적인 의료서비스의 혜택에 힘입어 시야를 돌려받은 경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해외에 뿌리를 내리는데 실패했다는 현실을 재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3년이 지났고, 자연스럽게 왼눈 차례가 왔다.

정기적으로 받는 안과 진료에서 작년 말, '수술을 하지 않은 왼쪽 눈에도 백내장이 약하게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3년 전 받은 대기표의 순번이 이제야 도착한 것만 같았다. 다행히 백내장이 눈의 중심부를 가리지는 않아서 아직 수술할 필요는 없었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2022년 봄이 되어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결국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윽고 수술대에 올라 왼눈의 중심부를 막고 있는 혼탁한 장막을 걷어냈다.

2019년의 기억은 생각보다 깊게 새겨져 있었다. 백내장 수술 자체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다소 익숙한 경험이었지만, 막상 수술을 앞두고 계속 생각난 것은 망막박리의 고통이었다. 영화를 보는 중 갑자기 눈을 찌르듯이 들어선 고통은 너무나 강력했기에, 끊임없이 별 거 아닌 수술이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러도 계속해서 불안감은 간간히 엄습해왔다.

수술 잘 끝났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두 번의 백내장 수술, 그리고 한 번의 망막박리 수술 당일 내가 집도의에게 직접 건네들은 유일한 말이었다. 정신없는 수술, 끝없는 대기로 사람의 혼을 빼놓는 대학병원 검진 모두,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수술과 검진을 거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긴 고민과 숙고의 끝이 겨우 이것인가' 싶은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업무적으로 만난 사이에도 사회적 격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했던 나는 이러한 절차가 지나치게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면, 생명을 두고 다양한 수술을 연이어 집도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감정적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수술 자체의 성과를 최대한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작게는, 이렇게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잘 안 보일 때 반드시 물건을 멀찌감치 둘 것

고도 근시로 30 이상을 살아오면 반사적으로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  눈을 가까이 대고 보게 된다. 오른눈에 백내장 수술을 해서 근시가 한쪽에 사라진 뒤에도  버릇은 사라지지 않아 나는 최근까지도, 심지어  눈을 수술한 지금도 가끔씩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물체를 들어 눈에 가까이 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지난 3  나는 수술하지 않은 왼눈을  혹사시켜온 것이 아닐까. 살아온 습관은 정말 무서워서, 나는 왼눈 백내장 수술을 마친 지금 물건을 멀찌감치 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새로운 눈과 함께 들이는 새로운 생활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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