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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n 07. 2019

망막 막리 수술, 그 이후

근 세 달 동안의 회복기

수술 이후 한 달 동안은 눈에 실리콘 기름을 넣은 채 지내야 했다. 심지어 첫 이 주 동안은 실리콘 기름의 부력으로 안구 뒤편에 있는 망막을 붙여야 했기 때문에 꼼짝없이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일상에 행복해지는 삶

우선, 엎드려서 자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엎드린 자세를 고정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 끝에 최후의 수단으로 목베개를 두세 개 겹쳐 올려 마사지 침대 같은 형태를 만들고 얼굴을 끼워서 잠을 청해야 했다.

눈에 물이 닿지 않게 하면서 인간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도 일이었다. 머리를 감는 것도 미용실 마냥 고개를 젖혀서 감아야 했고, 세수도 물세수가 아니라 화장솜에 토너/미용수를 묻혀 살살 닦아내야 했다.

눈곱이 수술한 눈을 덮을 정도로 쌓여서 그걸 떼어낼 때도 혹시 병균이 옮지는 않을까 비누로 손을 씻고 알코올 세정제로 재차 닦아낸 뒤 거울을 보고 조심스레 떼어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공교롭게 맹인 웨딩싱어가 되다

원래는 두서 달의 회복 경과를 두고 실리콘 기름을 제거해야 했으나,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과 회사 병가일수 탓에 두 달 좀 안 되는 시점에 마무리 수술 일정이 잡혔다. 한 30분 남짓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마침 그 주 주말에 있는 12년 지기 친구의 결혼식에 축가를 덥석 받았는데,

수술 이후 눈 한쪽 전체를 덮었다가 사라져 거의 깨끗해진 핏 멍이 기름 제거술 이후에 다시 눈 한쪽 전체를 덮어버렸다!

장기간의 요양(=끝없는 먹방)과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몸도 엄청 불어 있는데 눈까지 빨간 채 축가 무대에 오르기엔 내가 너무 창피하고, 직전에 취소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라 결국 선글라스를 쓰기로 했다.

차마 나를 직접 찍은 사진은 올릴수가 없어서....
심봉사의 눈처럼 갑자기 떠진 내 눈

사람의 눈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영상이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맺히는, 기계적인 원리로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름 제거술이 끝나고, 저 안압으로 오그라들었던 망막이 정상 안압으로 돌아온 뒤 펴지면 시력이 곧바로 회복된다고 예상했는데.

막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의 ‘잘 회복되었다. 원래 수술 6개월 후 시력이 최종 시력이다’는 말도 반신반의한 채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TV를 보는데 이전의 고도근시 때처럼 흐리멍덩했던 시야가 큰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는 게 아닌가! 이전까지 측정이란 게 불가능했던 시력도 0.2를 지나 0.4까지 상승했고 어느 정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한 두 달 정도 안약은 꾸준히 넣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일상생활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6개월 뒤 내 시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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