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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r 18. 2019

백내장 수술 한 달만에 찾아온 망막박리 (2)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만 내게 수차례 반복했다.

엄마가 낳을 때부터 눈이 나쁘게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안경 신세를 지게 해서 미안하다고, 수술 이후 마취가 풀리면서 각막에 타는 듯한 통증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손등의 링거 주사에서는 피가 역류해 올라오는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나 명확하게 귀에 꽂혀 들어왔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든 눈의 고통을 참아보려고 할 때마다 번개처럼 눈을 찔러대는 고통에 결국은 침대고 벽이고 발과 손이 닿는 곳을 열심히 후려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벽을 치고 침대를 쳐도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도 필사적으로 그렇게 나는 이기적 이게도 괴성을 웅얼거리며 내 고통을 사방에 전사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이 수 없이 반복되고 나서야, 간호사가 무미건조하게 이미 손등을 뒤덮은 피를 닦아내고 드레싱을 갈아주고, 진통제 주사를 성기게 놓아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통증 이후에는 별다른 통증은 없었다는 것일까. 수술 다음 날 의사 선생님은 망막은 무사히 잘 붙었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엎드려서 눈 안을 채운 기름을 띄워 망막을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환자분은 눈이 아주 특이하신 경우예요

응급실 진료를 받을 때부터, 수술 후 퇴원까지 의사 선생님은 계속해서 내 오른눈이 특이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고도근시인 데다 망막이 얇아서 망막 앞에 놓이게 되는 상을 따라잡으려다 안 그래도 얇은 망막이 찢어지게 되었다고. 망막박리에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수술은 다 하게 된 큰 수술을 겪으신 거라며. 앞선 백내장 수술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스페인의 햇살이 악영향을 끼친 것인지, 많은 내 질문에도 의사 선생님은 "그럴 수도 있지만 환자분 눈이 특이 케이스"라는 단서를 절대 놓지 않으셨다. 항상 남들과는 다르고 독특하고 싶었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하고야 말았던 그동안의 생활과 목표의식에 대해 벌이라도 받은 셈인가 싶기도 하고.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말을,
예전에는 그저 관용적인 표현으로만 생각했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것은 아니지만, 오른눈을 아예 잃어버릴 문턱에서 가까스로 수술을 받은 지 2주가 지나는 지금에서도 "만약 일을 시작하자마자 햇빛 반사광이 오른눈에 직격으로 들어오던 그 자리를 바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금요일에 통증이 시작했을 때 바로 응급실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애초에 백내장 수술을 받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대로 스페인 복귀 편을 한 나흘 더 늧췄다면 어땠을까?" 같은 수많은 의미 없는 선택지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보니, 그 말이 조금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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