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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02. 2022

'강간 문화를 장려'하는 '가부장적 사법체제'에 맞서,

스페인 이레네 몬테로(Irene Montero) 장관의 급진적 법안

스페인은 지금 남녀평등,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판결 기준 및 양형 수준을 다룬 법 개정안이 모든 현안을 집어삼키고 있다. 한 꼭지 정도 날 법도 한 스페인 총리의 한국 방문 기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 정도로.

'오로지 동의만이 동의이다(Solo sí es sí)'라는 제목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 법은,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트랜스 법(Ley Trans)'와 함께 남녀 평등부 장관 이레네 몬테로(Irene Montero)가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법이다. 2016년 산 페르민 축제에서 미성년자 여성을 다섯 명의 성인 남성이 집단 성폭행하여 스페인 전역을 뒤흔든 '라 마나다(La Manada)' 사건의 1심에서 이것이 '강간(violación)'이 아니라 '성적 학대(abuso)'로 평결되면서 시작되어,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을 했는가'를 판단의 중심에 두지 않고 '피해자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 하에 성관계에 동의를 했는가'를 판단에 중심에 두도록 하는 법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가해자가 동의를 얻었는가를 중심으로 따져,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성적 학대(abuso)'라는 개념 자체를 '성적 폭력(agresión)과 강간' 안에 포함시켜, 이전에는 형법 내에 포함되기 애매했던 형태의 성범죄(마약을 통한 강간, 거리와 디지털 공간에서의 성적인 언어폭력 등)들이 모두 범죄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의의는 있으나, 이 과정에서 최고 형량이 5년에서 4년으로 줄어들어 '과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최고 형량을 낮추는 아이러니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범위에서 성범죄에 대한 형법적 정의를 보다 페미니즘적으로 전환했다는 것만으로도 좌파 진영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파 진영, 특히 극우 정당 Vox의 강경한 발언으로 인해 좌우 진영의 언쟁이 보다 더 격화되며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시작은 중도 우파 PP의 한 국회의원이 남녀 평등부 장관을 '무능하다(inútil)'고 언급한 것이었고, 소소한 반향을 얻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갈등 국면은 극우 정당 Vox의 한 국회의원이 '당신(남녀 평등부 장관)의 유일한 메리트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를 꼼꼼히 연구한 것뿐'이라고 말하며 의회 연단에서 남녀 평등부 장관에게 성적 비하 발언을 날린 것.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현 연정 정부의 한 축인 Unidas Podemos의 전 당 대표이자 이레네 몬테로의 남편으로, 한 마디로 말해 '본인 실력도 없이 남편 덕에 자리 꿰찬 주제에 주제넘는다'는 말을 해버린 셈. 이 발언으로 인해 의회 모두가 뒤집어졌고, 집권 정단 PSOE, 페드로 산체스 총리를 포함한 오만 지역 정당(카탈루냐/바스크/카나리아)의 당 대표들이 너 나할 것 없이 나서서 이레네 몬테로 장관을 지지하는 성명을 연달아 발표하며 Vox를 연이어 규탄한다.

반면, 남녀 평등부 장관의 대처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는데, 앞서 언급된 '최고 형량을 낮추게 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만일 성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을 낮게 준다면 그것은 판사들이 남성 우월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며칠 전 의회 연설에서는 중도 우파 PP당을 향해 '당신들이 강간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라고 강경하게 나서며 대립각을 계속 세우고 있다.

현재 이 법은 대법원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이 또한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CGPJ(Consejo General de Poder Judicial)이 수 년째 마비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상황이라 여러모로 현 스페인 정치 상황의 모든 것과 맞물려 들어가는 중이다. 한 편, 안달루시아 지역의 축구 선수들이 (또) 미성년자를 집단 강간한 사건인 'Caso Arandino' 또한 이 법의 향방에 의해 영향을 받을지 약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안달루시아 지방 법원은 '만일 (그) 법이 제정된다면 그 기준(낮아진 최고 형량 기준)에 따라 평결을 해야겠지만 피의자 개인의 경우 각각을 살펴서 판단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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