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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20. 2022

5년 동안의 코마 끝에 사망: 카탈루냐 독립

화려한 열병은 금방 가라앉고, 차분한 현실은 살아남는다.

2017년 10월 림보 상태에 들어섰던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5년이 지난 2022년 10월에서야 공식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된 것 같다. 카탈루냐 내부 정치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던 Junts per Catalunya와 ERC(Esquerra Republicana de Catalunya)가 근 20년 만에 돌이킬 수 없는 선을 건너며 카탈루냐 지방 정부의 분열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묘하게 달라진 정부 구성 협상, 난항 끝에 성공은 했지만.

총 133석으로 구성된 카탈루냐 지방 정부에서 과반을 이루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68석이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지난 2021년 지방 선거에서는 Junts per Catalunya, ERC, 그리고 PSOE의 카탈루냐 지부인 PSC가 각각 33석을 얻어냈고, 앞의 두 정당과 군소 지역 정당의 9석이 합쳐져 아슬아슬하게 ERC의 페레 아라고네스(Pere Aragonès)가 지역 수반이 되어 정부를 구성했다.

보통 강성 독립운동 정당인 Junts per Catalunya의 주도 하에 ERC와 함께 이어져 왔던 2016년부터의 공존은, ERC가 도리어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게 되며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고, 달라진 협상 국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Junts와의 협상 난항으로 약 세 차례의 정부 구성 불발 끝에 간신히 지방 정부는 만들어진다.

지역정당 세 곳의 지지만 받아 당선되었다.
'1-O(1 de octubre)'의 트라우마로 시작한 불편한 공존, 깨지다

비록 2017년 10월 1일, 소위 '1-O'로 통칭되는 카탈루냐 독립 투표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중앙 정부의 폭력 진압의 트라우마로 인해 시작된 연합이지만, ERC와 Junts per Catalunya는 분명히 이념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집단이었다. 중앙 정부와 카탈루냐 정부 사이의 대화(Mesa del diálogo)를 통해 독립을 협상하고자 하는 ERC와는 달리, Junts per Catalunya는 투쟁(militancia)을 통해 독립을 쟁취해야 하며 중앙 정부는 협상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에.

'원격 통치'는 희미해지고, '사면'은 강력했다

독립 투표가 중앙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고, 당시 카탈루냐 지방 정부 핵심 정치인들은 정치범으로 수감된다. 핵심 인사 중 유일하게 체포를 피한 것은 카탈루냐 지방 정부의 비용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빠르게 도망간 지방 정부의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Calres Puigdemont). 그는 이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Consell de la República라는 사조직(...)을 통해 원격으로 Junts per Catalunya를 지휘한다.

2012년부터 거의 10년을 이어온 카탈루냐 독립운동, procés의 열기는 2017년 10월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가라앉고, 여론조사 상으로도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등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사실상의 '코마'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던 중, 중앙 정부의 총리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가
카탈루냐 정치범들을 사면(indulto)한다.

2017년의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PP당은 불신임안으로 인해 탄핵되었고, 이후 들어선 중도 좌파 PSOE 정권이 내민 카탈루냐 지방 정부에 대한 우호적인 손길은 국면을 순식간에 잠잠한 교착상태로 만들었다. 또한, 미묘하게 극우화 되어가며 도리어 극우 세력을 잠식하고 있는 거대 정당 PP당의 변화를 바라보며 카탈루냐 사회는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듯싶다. 중앙 정부와의 타협 노선을 채택한 ERC의 지지는 더 커져갔고 2021년 지역 선거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게 되었고, 더 이상 Junts per Catalunya에게 불편하게 끌려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내분을 겪게 된 것.

극단적인 투쟁은 극단적인 상대가 있어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대치 국면은 영원할 수 없고 결국 긴 호흡으로 살아남는 것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며 내미는 타협의 손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딱히 답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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