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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l 23. 2022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딱히 답은 없지만.

스페인 국정 토론을 보며 느끼는 공감과 절망

한국, 미국, 그리고 스페인의 뉴스까지를 계속 찾아 읽다 보면 절망감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아시아, 미주, 그리고 유럽에 위치한 나라에서 발생하는 사회 정치분야 문제들의 흐름이 비슷한 데서 느껴지는 묘한 안도감이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만이 가진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모두가 비슷한 문제를 맞닥트리고 있다는 데서 느끼는 묘한 안도가 우선 밀려온다.

최근 스페인 팟캐스트에서 '부동산 버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유독 반가웠더랬다.

그렇게 안도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갯벌처럼 남는 것은, 이 나라들도 결국 명쾌한 해결책 없이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어렵게 수렁 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보며 느끼는 절망감이긴 하지만. 그러던 중, 스페인이 오랜 국정 혼돈과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Estado de la Nación을 개최한다고 했을 때, 이 기회로 이 나라의 정부가 바라보는 가장 큰 문제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페인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에서 우파에 더 기운 정책을 펴고 있었던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가 급진적인 10개의 정책을 제시하여, NATO 회담 이후의 상황(북아프리카 국경 과잉 진압, NATO 회담 결과에 따른 군비 상승)으로 좌파연정정부 내부의 불만을 잠재웠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다만, 한국에서 토론을 보는 나의 입장에서 공감이 된 부분은 좀 달랐는데.

금리 인상, 금융지주기업에 대한 과세

대내외적인 이유로 물가는 끊임없이 올랐고, 우리나라와 EU,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법칙을 따라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견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빅 스텝'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유럽은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환율 변동으로 더 큰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며칠 전, 4대 금융지주의 올해 2분기 실적이 높은 금리에 힘입어 상상을 초월한다는 기사가 떴었는데, 과연 우리 정부는 선제적으로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다소 착잡하다. 

수도권 지역 부동산 과열

총리가 내세운 또 다른 정책은 마드리드 지역에 대규모 주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그 신규 부동산의 상당수를 공공 주거의 형태로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부동산 과열, 그리고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도 회자되는 것 같고, 다만 정권의 성향에 따라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농업, 지방 불균형

2022년 초 스페인을 휩쓴 유행어는 단연 '대규모 낙농업(Macrogranja)'이었다. 소비부 장관이었던 알베르 가르손(Albert Garzón)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낙농업 및 육류 과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우파 진영에서는 '좌파 정부가 선량한 농민들을 악의 근원으로 몰고 있다'며 여론전을 시작했다.

이윽고 비거니즘과 다양한 가치의 존중이 마치 수도권 및 코즈모폴리턴의 좌파적 사치이며 우파(및 극우) 진영을 통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 그리고 낙후된 지방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치러진 두 곳의 지방 선거(Castilla y León, Andalucía)에서는 중도 우파 PP가 승리하게 되었고, 카스티야 이 레온에서는 극우정당 Vox와의 연정으로, 그리고 안달루시아에서는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PP 단일 과반 달성으로 스페인 정계를 뒤흔들어버렸다. 

2023년부터 유럽연합이 안달루시아 농업에 지원하게 될 PAC(Política Agraria Común)에 대한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여기에 대한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지방 유권자들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을 되돌리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도 해보게 되고.

해결되지 않는 과거사와 파편화되는 좌파진영

PSOE와 함께 거대 양당의 한 축을 맡고 있는 PP의 당 대표는 애석하게도 국회의원이 아닌지라, 대변인인 쿠카 가마라(Cuca Gamarra)가 연설을 대신했는데, 25년 전 바스크 급진세력에 의해 사망한 PP당 정치인을 추모하는 침묵의 1분으로 연설을 시작하면서 대차게 불에 기름을 부었다.

스페인은 지금 프랑코 독재시대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그 시대의 희생과 폭력을 제대로 정립하고자 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기사). 프랑코 시대에 이루어졌던 모든 폭력을 명확하게 범죄로 규정하고, 프랑코와 그 추종자들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Valle de los caídos를 국립공원으로 전환하고, 카탈루냐와 바스크의 지방자치 및 그들 고유의 문화에 정당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주된 내용. PP당은 당연히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최근 새롭게 선출된 PP당의 당대표 누녜스 페이호(Nuñez Feijóo)가 대변인의 입을 빌어 더 강경한 대립각을 내세운 셈이다.

PSOE와 PP 사이의 논쟁이 더 과열되며 PP당이 거세게 우회전을 해, 
되려 극우 정당의 지지율을 뺏어가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위의 여론조사에서는 PP당 외에도, PSOE와 연정정부를 이루고 있는 Unidas Podemos 역시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독자 플랫폼을 공개하며 빠르게 지지를 얻고 있는 현 고용노동부 장관 욜란다 디아즈(Yolanda Díaz)의 효과가 크다는 해석인데, 우파 정당 두 곳(PP, Vox)과 좌파 정당 두 곳(PSOE, Unidas Podemos)의 지지율이 비등해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보이는 좌파 진영의 파편화를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욜란다 디아스 자신은 자신의 플랫폼 'Sumar;가 새로운 정당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기 위한 사회적 플랫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사실 정당이 하는 역할이 바로 대의 민주주의 기구로써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대변하는 것 아닌가? 결국 독자 정당으로의 독립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잡음을 줄이기 위한 말장난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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