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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18. 2022

2022년을 마무리하며,

대체 인간은 기록을 왜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지금 늦은 밤 컴퓨터를 부여잡고 막연하게 2022년의 마지막 브런치 글을 쓰겠다며 미처 정리되지 못한 난잡한 머릿속을 손 끝을 통해 두서없이 풀어내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술에 도리어 종속되어버린 세대의 한 사람답게, 글을 올린 지 15일이 되면 여지없이 손에 쥐어진 작은 화면도 모자라 손목에 채워진 시계의 진동으로 글을 올릴 것을 종용받게 될 것이 두려워 나는 여러 주제들을 꺼냈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올해 본 영화들 중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나빴는지를 거창하게 논해볼까, 나를 불안하게 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만든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면 회사에서 일하며 느꼈던 이런저런 것들을 말해볼까. 그 무엇도 선뜻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의 머릿속을 뚫어내어 명료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 중에는 카를라 시몬의 [알카라스], 그리고 이정홍 감독의 [괴인]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전혀 상이한 분위기의 작품이었지만 유독 이 두 영화가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았던 것은 이 영화들이 마치 판화와도 같이 작가가 바라본 세상을 깊은 물속에서 스멀스멀 띄워내듯 긴 러닝타임에 걸쳐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비전문배우들을 기용해 카탈루냐의 오렌지 농장에서 살아가는 대가족의 이야기를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며 보여줬던 카를라 시몬의 영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보면서 지금의 스페인이 직면한 상황을 뚜렷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반면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으면서도 천진하게 아무런 갈등을 내보이지 않는 의뭉스러운 이정홍 감독의 영화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의 사회를 돌아보며 작가가 그려낸 거대한 그 무언가를 강렬하게 움켜쥘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선형적이고 올곧은 화살과 같은 하나의 메시지보다도, 넓고, 묵직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조각해서 내어 보이는 거대한 이미지가 때로는 더 큰 울림을 준다.

항상 간결하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2022년은 유독 힘든 해였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 세계적으로 퍼트린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치의 문화는, 아무리 간결하고 쉬운 메시지도 그 안에 담긴 사회적 함의가 무너진다면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만성적인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더벅머리 아저씨가 농담처럼 시시껄렁하게, 쉽게 설파하던 정치 지형도는 어느새 사회를 전략과 협상의 게임으로 바라보고 유튜브 속 음모론과 통쾌한 법정 드라마 그 중간에 놓인 무언가처럼 소비하는 세태를 낳은 것만 같다. 친구들은 더 이상 어떠한 가치 속에서 사회가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상대 진영을 이기기 위해 무엇을 내어주어야 하고, 무엇을 포기하는 대신 그들로부터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부지런히 도 옮겨 담는다.

소셜 미디어가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은 도리어 손쉽게 왜곡되고 파편화될 수 있는 사회를 낳았고, TV를 넘어서는 접근성과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기도 전에 제시해준다는 콘텐츠의 알고리즘은 도리어 창작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콘텐츠가 공정하게 소비되고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쌓아 올려진 높고 불투명한 벽이 되어버렸다. 기술의 발전 이전에 그 기술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순진하고 입바른 메시지는 수많은 해시태그 중 하나가 되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만 같고,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 또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렌즈로 왜곡시켜서 사방팔방으로 발산시키는 메시지로 혼란과 갑갑함만 더해간다.

모두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주겠다 현혹했던 기술과 정치선전들은 뻔뻔하고 불투명한 부정의 장막에 가로막혀 모두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작동하는 것만 같다.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끝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운 사회인은 12월이라는 이미지에 짓눌려 무언가를 정리하고 다음 챕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거시적이고 거창한 완결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두서없는 글을 쓰지만, 결국 아무런 메시지의 화살도 쏘지 못한 채로 황망하게 끝을 맺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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