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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Feb 22. 2018

'나름' 전복적 재미로 엮인 2월의 영화들.

블랙 팬서, 쉐이프 오브 워터, 그리고 플로리다 프로젝트.

 메인 캐릭터들과 제작진들을 소수인종으로 기용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리듬과 접근법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다. 블랙 팬서를 보면서 정확히 그 느낌을 받았는데, 러닝타임을 숙지하고 영화를 보러 들어갔을 때 예상과 다른 속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오래 기다린 만큼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도 많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많은 이야기를 두 개의 큰 이야기 줄기와 세 명의 메인 캐릭터로 간단히 도식화하고, 그 줄기들을 주인공의 성장서사로 빈틈없이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다. 게다가, 기존과는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을 여기저기 꽃아넣고 그들에게 나름의 마무리를 쥐어주어서 이야기의 완결을 완벽하게 짓고 주인공에 대응하는 완벽하고 영웅적인 악역까지 만들어주었다.

 물론 완벽한 이야기이긴 한데, 한 편으로는 1) 결국 '디즈니'라는 브랜드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고, 2) 결국 마블 유니버스라는 큰 틀에서 다소 벗어난 독자적인 영화이기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팬으로써 쉐이프 오브 워터는 꼭 봐야만 했고, 심지어 오스카 노미네이션 명단을 보고 나니 더욱 더 보고 싶어졌다. 보고 나니 어쩌면 이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레버넌트'가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전작들이 있었음에도 아카데미에게 외면받다가 물론 훌륭하지만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은 작품으로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주는 그런 작품. 인테리어와 색채도 인상적이었고 직전에 보았던 블랙팬서와 마찬가지로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게다가 그 이야기가 과거 50-60년대의 클래식한 러브 스토리라는 것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첫 시퀀스 이후로 영화 자체가 나에게 주는 감동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심지어 더그 존스의 캐릭터는 헬보이에서의 에이브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사실 이 모든 영화들을 하루에 연달아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러 가면서 '제발 마무리가 좋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램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감독의 전작 '탠저린'은 쉴새없이 화면을 찔러대는 요란한 캐릭터 일색이었지만 그들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내심 그들을 응원하게 하는 영화였다. 반면 이 영화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짜증나는 에피소드의 끊임없는 반복일 뿐이고 뒤에 계속해서 펼쳐지는 파스텔톤과 내리쬐는 햇살은 이야기에 대비되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기 보다는 그냥 밋밋한 벽지같이 흩뿌려질 뿐이었다. You had it coming이라는 대사가 나오는 순간만이 이 영화와 내가 공감한 순간이었고 크레딧이 오르기 무섭게 극장을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무니가 먹는 아이스크림은 너무도 맛있어 보여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나는 솔 광장의 하겐다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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