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규정을 만드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팬더믹 이후의 스페인에서는 거주 안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장기 임대인을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퇴거시키고 집세를 더 높이는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중인데. 이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듣던 중, 카탈루냐 지방에 사는 78세의 할머니가 부당하게 퇴거당했음에도 최근 입법된 임대인 퇴거 방지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카탈루냐 지방 법은 5개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임대하고 있는 경우(Gran Tenedor라고 부르는)를 대상으로 이 법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할머니의 경우 집주인이 관리하고 있는 임대 부동산은 4개였던 것.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안타까운 분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익숙하게 변주되어 들어왔는데도, 이렇게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들이 다른 곳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될 때마다 왠지 모를 공감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되고.
문득, 법과 규정에서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책을 고안할 때 생각했던 막연하고 이상적인 지향점은 실제로 적용되기 위해 구체화되어야 하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설득의 과정에서 간결화되어야 한다. 누구나 정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앞서서 만들어졌던 많은 기고문과 연구자료들은 한 두 페이지(혹은 한두 문장)로 지향점과 실현 내용을 제시할 것을 요구받고, 가장 먼저 '무슨 이유'로 '어떠한 상황/조건'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설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재원을 분배하기 위한 공정한 규칙에 대한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비극적 이게도, 숫자만큼 반발을 손쉽게 잠재울 수 있는 규칙은 없다.
특정한 집단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판에서의 기준은 모두가 이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조건을 문장으로 아무리 풀어낸들 거기에는 정책이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 있고, 그 가치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관점은 각자가 너무나도 다르다. 다양한 스펙트럼에 놓인 다양한 사람들이 내놓는 의견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게 동일한 문장을 읽은 사람들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으니까. 결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은 납작하게 수치화된 지표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상은 한 가지의 계량화된 지표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많은 요소들이 산재되어 있고 한 가지만을 문제로 삼아 그로부터 단순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결국 그중 가장 큰 원인으로 판단되는 것을 중심에 놓고 해결책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또한, 명확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논의의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기만 하다.
0과 1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고, 도화지의 가운데에서 문제를 머금은 채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현상과는 달리 정책은 특정한 지점을 기준으로 명료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우리의 기준점이 원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은 물론이거니와, 정책이 또 다른 메시지가 되어 예상치 못한 영향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도 이루어진다.
결국, 다양한 생각들을 묵살하거나 폐기할 수는 없기에 고민 속에서 길어지는 정책은 더욱더 복잡해지고 장황한 매듭 덩어리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그 덩어리 안에 파묻혀버린 설득력을 다시 끄집어내자니 지금까지의 논의를 모두 무(無)로 되돌리는 것만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