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하게 이틀 동안의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여기저기로 출장이나 여행을 가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다. 길을 나서는데 한 8년 전만 해도 이틀 정도의 출장, 그리고 나흘 정도의 휴가는 백팩 정도로 해결했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 나는 고작 이틀 출장에 캐리어를 끌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것들은 늘어만 간다. 예전에는 정장 한 벌에 갈아입을 셔츠 한 장. 그마저도 급할 때면 사서 입기도 했건만 이제는 사서 입을 셔츠의 주름을 먼저 고민한다. 스킨과 로션, 심지어 올인원 제품을 쓴 때도 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화장품을 담은 파우치가 따로 있고, 전기면도기를 들고 다녀야 하고. 회사가 바뀐 지금은 캐주얼하게 입느라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생각을 하면서도 다양한 격식에 대한 정도의 수를 준비하고, 캐리어 안에서 옷감이 구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필요한 돈도 늘었다. 아무 곳에서도 잘 버텨주었던 내 허리와 척추는 이제 제대로 된 침대가 있는 숙소가 필요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항상 내 냄새를 체크하고. 아마 사회화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나 자신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놓일 사회적인 상황을 생각하게 되고, 그 안에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와 보여야 할 모습을 신경 쓰게 되면, 변수는 나 자신이 아닌 외부로 옮겨진다. 필연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부질없는 통제는 내 생각을 늘려가고 움직임을 무겁게만 만든다.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것도 그렇다. 계속해서 내 몸가짐과 입장, 그리고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표현이 끊임없이 해석되고 때로는 왜곡되기까지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게 계속되다 보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통제하고 조율해서 최상의 모습을 오해의 여지없이 보여주고만 싶다. 인스타그램은 없던 사회적 압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을 무한대로 증폭시켰을 뿐.
삶은 살아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사회는 각자가 나름대로 살아온 삶의 궤적이 엉겨 붙어 있는 거대한 거미줄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각자가 제자리에서 깊게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거대한 유리 개미집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접점이 전혀 없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존을 위한 균형을 맞추는 데 피로해진 나머지 각자가 각자의 자리를 유지한 채 고립을 택하고 있는 것 같고. 서로가 서로의 상황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사회적 안정을 유지한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