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eudonysmo Feb 07. 2019

삼십 대에 백내장이 왔다.

포르투 여행을 다니던 중, 이상하게 오후 즈음만 되면 오른쪽 눈 앞이 흐릿해졌다. 사실 예전에도 몇 차례 있었던 현상이고, 인공눈물을 넣으면 흐릿함은 곧잘 사라졌기 때문에 여행 첫날에는 그냥 인공눈물을 넣어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릿함이 사라지지를 않아서 약간 의아했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 흐릿한 오른눈이 찌른 듯이 따갑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휴가를 다녀오자마자 바로 병원 예약을 했다.

1. 병원 예약

스페인에서 병원을 가는 것은 예상보다 복잡하다. 물론 갑작스러운 상황에 응급실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전화 혹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종합병원 홈페이지에 가서 예약을 하려고 보니 진료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안과'.....  네이버 사전에 찾아보니 Oftamología라고 떠서 다행히 선택했다.  10년을 스페인어를 써도 이런 용어는  일이 없다 보니 결국 사전의 힘을 빌리게 되고.

2. 백내장 진단 - 스페인

여차저차 해서 병원을 와서 보니, 오른눈에 백내장이 와서 시야의 80%가 사라졌단다. 보통 60대 이상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데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 언제 강하게 머리를 맞은 적이 없냐고 물어보고... 어찌 되었건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험 상태를 물어보는데, 나는 당연히 스페인 국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보험을 들은 상태다. 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던 보험 카드를 간염백신이랑 가다실 맞을 때 이외엔 쓴 적이 없는데 드디어 써먹을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의사가 설명을 해주는데

백내장 초기라면 화학물로 발병을 늦추지만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늦은 상태이다.

나이가 어려 백내장 진행이 빠를 수 있으니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그런데, 양 눈이 모두 고도근시에 난시라서(근시가 miopia인 것은 알았는데 갑자기 astigmatismo라는 단어가 들려서 뭔가 했다) 백내장 수술을 하지 않은 왼눈은 수술 후에는 근시가 전혀 없는 오른눈과의 시력 차이가 엄청 크게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아무 문제가 없는 왼눈도 인공수정체로 교체하는 것이 좋단다.

그리고 오른눈의 경우 난시까지 교정을 하려면 보험 보장이 되지 않으며, 비용은 1,300유로가 든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수술 전 검사로 혈액/심전도 검사를 마쳤다. 혹시 몰라 한국에 다녀온 뒤인 2/28일로 수술 날짜를 잡고, 한국에 도착했다.

3. 백내장 진단 - 한국

그러고 나서 한국에 왔는데, 큰 결은 같은데 약간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굳이 멀쩡한 왼눈을 인공수정체로 바꿀 이유는 전혀 없으며, 인공수정체로 바꾸면 근거리를 보지 못하는 노안이 오른눈에 오기 때문에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해서라도 왼눈은 그대로 두는 게 좋다.

그리고, 왼눈에 안경을 끼기보다는 콘택트렌즈를 끼는 것이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오른눈 인공수정체를 토릭 수정체로 바꿔 난시를 교정하는 것이 가능은 하나, 고도근시인 현재 상황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아 수술 성공 보장이 어렵다.

결국 멋 모르고 양쪽을 다 인공수정체로 바꿔버렸다면 노안이 와서 결국 돋보기안경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한국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였고, 모든 것이 빠릿빠릿하게 진행되는 한국 답게 나흘 뒤 바로 수술을 받기로 결정되었다.

4. 백내장 수술

수술 자체는 정말 의아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눈을 국소 마취하고 한 20분 동안의 뻐근함과 어둠 속에서의 두려움(....)을 지나치면 이렇다 할 통증도 없고 심지어 눈 앞도 바로 보이는 것이다! 유치원 때부터 안경을 쓰고 다니다가 안경도 안 쓴 채로 눈 앞이 오롯이 보이는 걸 경험하니 너무나 신기했다.


P.S. 수술 당일은 눈가리개를 얹은 상태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지내야 했고, 일주일 동안은 얼굴을 씻을 수 없었다. 그런데 수술이 이렇게까지 빨리 잡힐 줄 모르고 그 주 주말에 오만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 더러운 꼴로 사람들도 만나고.... 셀카도 찍고....(오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