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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스테이지 Mar 14. 2018

그 정도면 사실 충분한 하루야-2

진정한 하루는 새벽이 오고부터

8시.

서서히 그 날을 정리해보려 일기장을 열어보지만 어제한 일이랑 뭐가 다른 거지? 그냥 노트를 덮어버린다. 그러고선 핸드폰을 쥐고 폭풍 SNS를 한다. 아 다들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가 부럽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폼나게 살아보지? 하면 자괴감을 스스로 느껴주고는 금세 싫증이 나버린다.


10시.

진정한 백수라면 이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는 기쁨에 외장하드에 담겨있던 소장용 영화들을 훑어본다.(불법 다운로드는 나쁜 것입니다.) 오늘 새벽엔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어떤 시대? 호러물? 로맨스? 고민을 해봐야 뭐하나 내 애장용 영화인 'HER'을 주저 없이 클릭한다.


 영화 'HER'의 포스터

영화는 주인공의 퇴근길을 함께 동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없이 처진 주인공의 어깨를 보며 그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와 다름없어 보이는 현대인의 퇴근 후 일상이 펼쳐진다.(영화 속 시대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조용조용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로맨스에 함께 웃고 화내다 보면 금세 2시간이 지나버린다.

퇴근 중인 주인공


1시.

영화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새벽녘은 내 안에 감성을 폭파시키기 충분한 습도와 조도, 소리를 갖고 있다. 옆에 누워있는 친동생의 숨소리까지 감정 우물 속 바닥 정가 운 데에 쭈그려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1시가 지났다는 건 잠에 들어 아침을 맞이하면 24시간, 하루가 지나는 순간이 오기까지 11시간이 남았다는 얘기다.

나란 인간은 이 11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어폰을 끼고 블로그를 열었다. 영화감상 후에 생겨난 잡생각들 인스타를 보다가 생각난 내 과거 이야기,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을 눌러보다가 보고 싶어 진 친구 이야기. 시시콜콜하게 적어 내려가다 보면 3시다.


3시.

이제 자야지.

생각 많고 고민이 넘쳐나는 이 백수는 오늘도 참 알차게 보냈다며 스스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며 이불 위에 눕는다.


이 정도면 사실 충분히 잘 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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