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키스테이지 Mar 12. 2018

그 정도면 사실 충분한 하루야-1

무엇인가 꼭 성취해야만 의미 있는 날은 아니다.


5분마다 반복되는 알람 소리에 깨어나면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고 습관처럼 내가 잠들고 난 뒤 확인 못한 카톡들을 확인한다.

방에서 나와 또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켜면 나도 모르게 2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아침밥을 먹는다.


11시.

제일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백수가 된 지 2개월이 지나니 저 애매한 시간은 참 고통스럽다.

금방 밥을 먹은 것 같은데, 그것 말곤 내가 아직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직장에 다니는 누군가는 오전 시간 가볍게 티타임 후 회의를 거쳐 그날의 업무를 확인하는 워밍업 같은 시간이겠거니 나도 거기에 맞춰 하루 일과를 위한 워밍업이라고 생각해본다. 백수의 일과라고 해봤자. 어제 지원했던 회사들이 내 자소서를 열람했나 확인하고 구인광고 올라온 회사들을 3군데 정도 추려서 자소서를 넣고 나면 얼추 그날의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끝나는 셈이다. 별일 아닌 듯 하지만 금세 3시가 되어 버린다.


학교를 다닐 때나 직장생활을 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스케줄대로 살아가던 나의 수동적인 생활은 익숙해지기 너무 쉽고 의존하기 쉬워서 나 혼자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기 쉬웠다. 얼핏 봐서는 내가 짠 시간표대로 혹은 업무의 우선순위를 매겨 그 날 하루의 스케줄을 세운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보이지 않는 (학교라면 학점이수라던지 졸업을 위한 출석, 직장이라면 데드라인을 앞세워 압박해오는 상사의 눈빛) 힘에 의해 끌려가고 밀려가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누구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말도 해주지 않고 오롯이 내가 주체가 되어 나의 하루를 꾸려가야 한다.


4시.

그래 반드시 해야 할 구직 활동은 오전 시간에 다 했고 저녁 먹기 전까지 2시간은 운동을 하자. 일주일 전에 시작한 수영을 하러 차를 끌고 20분 정도 달려간다. 백수가 해야 할 일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망가진 몸과 체력 다시 회복하기란 것은 웬만큼 힘든 회사에서 디자인을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 갈 부분이다. 일을 다시 시작할 시점엔 며칠 밤은 거뜬히 셀만큼의 체력은 있어야 1년을 또 버틸 테니 말이다.


6시.

저녁을 먹는다. 어째 생산적인 일이라곤 하나도 안 했는데 왜 배는 고픈 거지? 가끔 뱃속이 야속할 정도로 미워진다. 이럴 때 느끼는 게 내가 바로 식충이구나... 하는 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 소모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