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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스테이지 May 21. 2018

감정 소모의 시작

나는 감정노동을 하느니 차라리 육체노동을 하겠다.

어느샌가 회사를 출근하는 매일 아침 오늘은 무슨 퇴사 사유를 만들까 고민을 한다.

이게 참 정직원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사람을 혹하게 하여 계약서로 사람을 목 조르는 그런 기분을 매일 느끼자니 너무 힘들어 머리가 하얗게 샐 지경이다.


정말 강도 높은 직군에서 육체노동, 데스크 작업 그리고 감정노동. 이 세 가지 노동을 한꺼번에 종합 선물로 다 겪어보니 웬만한 일은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강도 높았던 이전 직장은 그래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이 행복했고 결과물에서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을 아주 확실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엄청난 메리트였다.

 

이와 반대로 

현재 근무하는 회사의 일은 딱히 힘들지 않다. 이전과 비교하자면 상사는 늘 칼퇴를 권장하기 때문에 인테리어 설계를 진행하더라도 빠르게 끝낼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디테일의 부재로 이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디자인의 프로세스가 콘셉트 이해 키 이미지 도출, 리서치, 아이디어 회의 등등이라고 공부하고 일했던 나에겐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콘셉트와 디자인에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하기 위해 디테일을 버리니 정말 흔하디 흔한,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냥 업자들이 공사해주는 수준으로 설계가 진행된다. 높은 퀄리티는 상상도 또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때문에 설계전 콘셉트를 탐구하는 시간이나 설계자의 의견과 디자인 피드백과 같은 키 프로세스가 빠져버린 작업을 계속해서 해보니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들을 수확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싶고 다양한 이미지를 실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 직장에서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시도를 해보려 해도 결국 상사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으니 전혀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내가 느낀 작은 회사의 가장 큰 단점은 적은 인원이기 때문에 한 명이 빠지면 회사의 타격이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2달을 겨우 넘긴 사원이지만 직장 내의 중요한 사항에서 선두에 서게 되어 내가 빠지게 되면 참 난감한 상황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이다. (뭐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윗선에선 돌발상황을 미리 대처했을 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별것도 아닌 걸로 퇴사하면 알아서 해라 나는 집주소도 알고 전화번호도 안다.라는 식의 어이없는 농담을 할까 (당신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겠지만 당신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 혹은 어린 사람이 들었을 땐 꽤나 무서운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제 와서 글로 내 답답함을 풀어보려 적어 내려가고 있지만 왜 그 순간에 확실하게 내 의견과 내 감정을 전달하지 못했을까 참 후회가 된다. 나의 성격상 거절도 못하고 상대방이 곤혹스러울 수 있는 부탁이나 말은 쉽게 꺼내질 못한다. 나를 희생하는 상황의 연속일 때가 훨씬 많아 매번 후회하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봐도 쉽게 변하지 않더라.


어제 무례한 사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사가 강연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이나 갑질 하는 듯한 언행을 한다면 무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그건 잘못된 거 같은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기분이 무척 안 좋네요~ 혹은 이런 말을 따님에게 해도 기분이 좋을까요?' 등의 웃으면서 앞으로 까는 방법을 시행하라는 강연이었다. 당연히 오늘도 그런 상황이 나에게 펼쳐졌고 일반인이라면 특히나 여자라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 스트레스로까지 커질만한 언행을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왜 연사의 말처럼 하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의를 강조하던 유교사상에 너무나 절어있어 나보다 나이가 많고 직책이 높다고 생각이 드니 함부로 말을 하면 실례라는 생각을 그 순간 해버린 내 잘못이었다. 그 사람은 나한테 함부로 해도 나는 어리니 다 참고 지나가버려야지 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게 실시간으로 내 앞에 펼쳐지면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더라 결국 대답은 하지 않고 웃고 넘길 수밖에 없더라. 


스트레스는 결국 눈물로 터져 넘쳐흘러버렸다. 

근 며칠간 왜 뒤통수에서 두통이 올라오나 했는데 아마 그 원인이 이것일 것이다.



"제나 씨는 언제 결혼할 건가?"


"저는 최대한 늦게 가려고요."


"왜? 성공한 다음에 결혼하고 싶은 거야? 아님 돈을 벌고 나서 결혼하겠다는 거야? 아님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고 나서 하고 싶은 거야? "


"하하하.... 글쎄요." (너님이 왜 궁금하실까요)


"성공하고 난 다음은 너무 늦을지도 몰라 여자는 빨리 가는 게 좋지 제나 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2세를 위해서"

"..."(난 2세를 가지겠다고 한적도 없다. 아니 결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 줄테니까 걱정 마! 그런 건 해주는 오픈된 회사야!"

"하하..."(저기 저는 결혼도 아직 생각 없는데 출산 휴가라니요. 아니 출산휴가 주는 건 법으로도 정해져 있는 건데 오픈된 회사라니요. )


아직까지도 상대방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다고 해서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서 질문하고 인지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당연히 나보다 어른들의 말을 듣고 참고할 수는 있다. 경험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 경험도 이 경험도 모두 소중하니 그냥 각자의 삶을 존중해하면 안 되는 것인가? 굳이 개인의 삶에 대한 정의를 물어보고 본인과 다른 논리나 정의를 대답하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생각을 갈갈 히 난도질하여 부정하는 것이 아직도 만연하다니 너무나 지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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