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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Oct 27. 2020

두 번의 만남, 두 번의 이별

홀연히 나타나 사라져 버린 어린 왕자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우연한 기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오래전이라

분명 읽어봤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언제 읽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던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죠.


최근 아이들에게

독서와 토론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수업 준비를 하는데 필요한 도서였죠.

어린왕자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 뿐이라곤

코끼리를 삼킨 모자 모양의 '보아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 장씩 읽어 내려갈 때마다

마치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서른이 넘은 성인이 된 제게

어린왕자는 예전에 제가 알던 친구가 아니었어요.

그는 또 한 번 반짝이는 말들을 제게 들려주며

홀연히 자기 별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뭔가 알 시간조차 없어.
그들은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사지.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는 거야.


잘 가.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잊고 있던 여우도 만났습니다.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지길 원했던

솔직하고 순수했던 여우.


외로움이 많아 보이던 그 여우는

무언가를 길들이거나

관계를 맺는 것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어린왕자처럼 떠나가버렸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어떤 별에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무척 즐거울 거예요.
모든 별들이 꽃처럼 보일 테니까요.


모두 별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다 똑같은 별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작은 빛에 지나지 않아요.
학자에게는 풀어야 할 문제지요.
내가 만난 사업가한텐 별이 돈이고요.
하지만 별은 말이 없어요.

아저씨는 그런 사람들하고
다른 별을 갖게 될 거예요...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나는 그 별들 중 어느 한 별에서 살고 있을 거고,
그 별들 중 어느 한 별에서 내가 웃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 아저씨에겐 마치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죠.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될 거예요 !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난 어린왕자가

사막에 불시착해 비행기를 고치던

생택쥐페리를 만난 것처럼

운명이란 폭풍을 만나 무인도에 고립돼,

삶의 나침반을 고치고 있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예전엔 친구였던 그가

이젠 저를 아저씨라 부릅니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여러 메타포가

그를 한층 더 지혜로운 친구로 보이게 만듭니다.


반대로 과거엔 보였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제겐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어린'왕자로 남아있던 그는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이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무언가를

또 한 번 남겨주고 떠나갔습니다.


그가 남겨준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알고 싶지만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뭔가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지금의 내게 있어 

밤하늘의 별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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