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피로스 Oct 21. 2020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세상 참! 좁다

저는 남양주 별내라는 곳에 삽니다.

오늘은 서울 강동구에 면접을 보러 갈 일이 있었죠.

처음 방문하는 곳이고, 면접 날이기도 한만큼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습니다.

면접 장소는 강동구청역 바로 옆이었는데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주변 카페를 찾았죠.

역 주변을 배회하다 큰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심장이 두근대며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바로 예전에 다닌 모교를 발견한 겁니다.


? 니가 왜 여기서 나와 ?
서프라이즈 ~!
와! 잔디도 깔았네 !


와! 정말 놀랐습니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는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싶었지요.

초등학교 때 저는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제 기억에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2년 동안

여기 초등학교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반장)

성내동이란 곳에 집이 있었는데

강동구청 옆이 성내동인 줄은 몰랐던 거지요.

그리고 역 바로 옆에 이 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이나 몰랐습니다.


막연히 어렸을 적

난 이런 곳에 살았고, 이런 학교를 다녔지

하는 정도의 이미지로만 떠올려지는

그때의 추억들이었는데.

다 큰 어른이 되어 다시 이곳을 예상치 못하게 방문하니

정말 감회가 새롭단 말이 나오더군요.


반가운 만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싶어서

시간도 많이 남았겠다

예전에 살던 집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죠.

아주 희미해져버린 기억의 실마리를 따라

예전엔 너무나 익숙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낯설어져버린

길거리를 배회하며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100원짜리 불량식품과 달고나 뽑기를 곧잘 사 먹던 문방구. 뭔가 좀 바뀐 것 같아요.
익숙한 동네 풍경...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라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날 때마다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처음엔 긴가민가 했습니다.

이 길이었나? 저 길이었나?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했고

8살 때부터 10살 때까지의 기억은

너무나 희미해져 버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 년을 다녔던 길이었고

어린 시절 친구들과 늦게까지 뛰 놀며

여기저기 돌아다닌 기억이 남아있었는지

기웃기웃 거리며 곧잘 집을 향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다.

결국 도착했습니다.


입구
옆집엔 정말 친한 형이 살았어요. 보고싶다 장욱이형.
내 방이 있던 곳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집 앞의 추어탕 집은 없어졌네요.

와...

정말 찾아왔어요.

설마설마 찾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찾아냈습니다.


처음엔 건물 외관만 보고

여기가 맞나 싶었는데

옆에 있던 입구와 내부의 문을 보니

확신이 들더군요.

여기가 맞았습니다.


몇년 동안이지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이 남아 있는 집.


정말 신기했습니다.

집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모두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어렴풋이 골목골목마다 새겨진

희미한 기억들의 흔적과 자취를 쫓아가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게 회귀본능이란 걸까요ㅎ


옆에 대로변을 따라 가면 천호역이 나오던 거리.

또 놀랐던 건

예전엔 그렇게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불과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코웃음이 나더군요ㅎ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우연히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죽기 전, 두 번 다신 떠오를 일이 없었을 

사라질 운명의 기억들이었을 겁니다.

심연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희미한 기억의 흔적들이

공간에 새겨져 있던 익숙함이란 감각을 만나

다시 생기를 되찾고 살아났던 거죠.

너무 낯설 것만 같았던 그 익숙한 골목마다

자주 놀러 가던 친구들의 집주소,

친했던 친구의 이름,

그들과 함께 했던 게임 장면,

자전거, 축구공, BB탄총들이 숨어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새록새록 하나씩 떠오르는데

정말 묘하고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그때의 저와 제 추억 속 존재들에 대해

그리고 그걸 여전히 잘 기억해내고 있는

지금의 저에게 말입니다.


불과 40분 만에 벌어진

놀라운 깜짝 이벤트였지만

(무료한 나에게 삶이 건네준 서프라이즈 이벤트)

오늘이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면접엔 늦지 않았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결론은

참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글을 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