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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Nov 30. 2020

집은 꼭 사야 하는 걸까?

내 집 마련은 왜 모두의 꿈이 되어야 하나

"집은 꼭 사야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하던 도중

잠시 짧지만 긴 정적이 찾아왔다.


3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이 된 우리의 대화 주제는

20대 때의 그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

대화의 중심 주제는 항상 '취업'이었다.

각자 취업에 성공한 뒤엔

서로의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름 직장을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게 된 무렵부터는

그 다음 단계의 대화 주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리 3년 차인 한 친구는

직장생활의 고충과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에 결혼을 한 친구는

결혼생활과 자녀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보다

현재 친구들의 관심이 가장 크게 쏠려있는 건

단연 '돈'에 관한 주제였다.


보통 시작은 항상 주식 얘기다.

대화의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어디가 올랐더라 내렸더라,

어디가 오르겠더라 내리겠더라.

다음은 부동산이다.

아는 사람이 어디를 사서 이만큼 벌었다더라

주변의 누가 어디를 못 사서 땅을 치고 후회하더라.

친구들은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큰돈을 벌기 위해선,

제대로 된 내 집 마련을 위해선

주식과 부동산밖에 답이 없다는

나름대로의 확정적 결론을

이미 내리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참으로 달콤하면서도 허망한 꿈 같았다.

현재의 소득 수준으로 집을 마련하려면

대출을 받아 최소 20년은 갚아야 한다.

힘들게 대출을 모두 상환하면 50세가 넘는다.

찬란한 한창의 청춘

대출갚아 나가다 끝이 나고,

대출을 모두 상환해 내 집이 생기는 노후엔

보험료와 병원비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된다는 거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면

기한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것도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때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경우에 한한다.


평균 집값이 4억이 넘어버린 애증의 서울


집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20년의 시간은 너무도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계좌에 표시되는, 줄지 않는 대출금 잔액은

그 거리감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근로소득이 이외에

부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재테크에

젊은 세대의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 같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혹은 로또만큼은 아니지만

일확천금의 기회가 나에게도 분명

한 번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빨리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삶의 안정을 취하고 싶다.


지극히 단순하고 순수한 욕망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지 않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도 돈을 못 버니 이러는 거다.

평생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고

사회란 정글의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앞으로도 그리 자유롭지 못할 이들은

하루 빨리 안정을 얻고 싶은 것뿐이다.


내 집 마련은 그 과정의 종착지와 같다.

최종보스와 비슷한 것이다.

(그 다음은 건물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어디까지가 끝일지, 끝이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여유롭고 편안한 내 인생의 안식년이,

지친 몸과 마음을 눕힐 수 있는 그런 때와 장소가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갈구한다.


그런 때와 장소를 마주하기 전의 청년들은

암담한 미래의 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이 경쟁의 시대에

치열한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 데에

온 정신을 기울이는 것도 벅차다.

자연스레 삶 여유가 없어지고 만족감이 떨어진다.

항상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산다.

나아가 그러한 불안정한 감정 상태는

스트레스와 내면의 분노로 쌓여가기 마련이다.

젊은 세대가 평등, 공정, 정의와 같은 단어에

민감한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가 항상 지쳐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우니 예민하다.

그 어느 것도 손해보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반칙은 타도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고,

불공정은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중에

문득 내가 물었다.


"집은 꼭 사야 하는 걸까?"


만약 우리가 '집'을 사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손쉽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만 여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내 젊음과,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

20년을 투자해서 가져야 할 소유자산이 아닌,

자산가치가 높은 재테크의 수단으로써가 아닌,

그저 살 수만 있는 그런 단순한 공간으로서

집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집은 꼭 그렇게까지 해서 소유해야만 하는

어떤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우리의 귀중한 자원을

집이란 자산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생산적인 현재와 미래를 위해 쓸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지금의 삶의 질과, 마음과, 행복 수준이

훨씬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그런 날이 오겠냐."


친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실 나 또한 그랬다.

이상적이고, 한 번쯤 희망을 품어보고 싶기는 한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보고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떼 가는

북유럽 같은 곳에 가서 살란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지만

자가보유율은 절반 정도의 수준인 우리나라.

전 국민이 각자 한 채의 집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의 매물이 있지만

실상은 2명 중 한 명만 집을 갖고 있는 나라.

(서울은 10 가구 중 5 가구만 실소유주, 라는 통계를 봄)

이런 암울한 현실을 생각해보면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근래에 내가 속한 사회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난 이런 작은 방 하나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세상이 찾아온다면

내 친구들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여유롭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는 생각을 해봤다.


뜬금 없고

부질 없는

오늘의 백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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