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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Dec 02. 2020

성현이의 눈물

울지 않고 눈물을 흘리던 아이에게...

방문 교사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날씨가 꽤나 추워져 가지만

바쁘게 집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추위도 못 느낄 만큼 정신없을 때가 많다.


부업으로 시작한 이 일은

여러모로 내게 잘 맞는다.

우선 일의 양을 재량껏 조정할 수 있어서 좋다.

주 3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학생들의 시간표를 편성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대면수업이 어려울 때면

비대면수업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도 가능하다.


또 가르치는 일이라는 게

나름의 적성에도 맞는 듯하다.

주로 가르치는 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인데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질문하고 열심히 받아 적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참 기분이 좋고, 흐뭇하다.


어제는 5학년 성현이네 집을 방문했다.

좀 특별한 친구였다.

말 수가 적고, 온순한 성격인데

낯은 좀 가리지만

장난기가 있는 남학생이었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서 그런지

성현이는 나를 아직 불편해하는 듯했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수업에 집중도 잘 못하고

계속해서 딴짓을 하며

같은 질문을 3-4번 해야

겨우겨우 한 번 대답을 할까말까였다.


어제는 그 정도가 좀 더 심했다.

아무래도 수업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현아. 요즘 무슨 걱정 있니?"


(성현 : 도리도리 > '아니오')


"음... 그럼 성현아.

선생님한테 솔직히 말해봐.

이 수업이 재미가 없어?"


(성현 : 끄덕끄덕 > '네')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이 나이 때 어린 친구들 중에

공부를 재미로 하는 친구가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대놓고 나와 함께 하는 수업이 재미없다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억지로 수업을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보충수업을 하더라도,

오늘은 진도를 미루고,

이 친구와 대화를 좀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이 수업에 대한 아이의 속마음이 어떤지

이 친구의 진솔한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천천히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의외로 성현이는

수업을 할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와의 대화에 임했다.

말문이 열리고 대답이 나오는데

꽤나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얌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나의 질문에 모두 꼬박꼬박 답해주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성현이의 붉어진 눈에서

뭔가가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때는 소리 내어 울 때가 아닌가, 싶었지만

성현이는 아주 침착하게

그 작고 맑은 눈에서

소리 없이, 묵묵하게

한 방울씩 뚝뚝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이 정말

얼마나 미안하고 짠하던지.

더는 아이에게

뭔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옆에 있었다.


왜 우는지

난 알 수 없었다.

이야기 도중 흘린 아이의 눈물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어떤 마음에서 시작된 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성현이는 이 수업 자체를 싫어하는 듯했다.

하기 싫어도,

하기 싫다고 엄마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억지로 꾸역꾸역

해야 하니까,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내 앞에 앉아 매번 수업을 하려니

얼마나 싫고 힘들었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그냥 냅뒀다.

하기 싫은 거

오늘 하루는 안 할 수 있게,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해 줬다.

눈물을 흘리는 데

뭔가를 대답하기 힘들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 줬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꽤나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자 머쓱했는지

아이가 후딱 눈물을 훔치고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난 대충

성현이에게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그게 위로가 되었던 건지

또 다른 걱정이 되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성현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거야.

물론. 네 나이 때 그게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하기 싫으면 넌 충분히 안 해도 돼.


난 너와 즐겁게 수업을 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래도 선생님은 괜찮아.

너가 원하면 내가 네 편이 되어서

엄마에게 잘 이야기해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너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줘 볼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성현이와 있었던 일을

곰곰이 회상해봤다.


사교육에 종사하면서도

이렇게 힘들게 사교육을 받는

지쳐있는 저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또 현타가 찾아왔다.


말없이 흘리던 아이의 눈물 속에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무겁게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비치는 모습에

무엇이 아이들의 것이고

무엇이 어른들의 것인지

헷갈리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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