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그 놈의 탄생
멋들어지게 양복을 걸친 사내의 입에서 거침없이 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엿 같은 놈들. 지들이 할 일까지 나보고 다 하라고 하면, 도대체 난 언제 퇴근 하냐고.. 젠장."
사내의 주먹이 거침없이 테이블을 내려친다. 그 바람에 탁자 위에 있던 과자와 음료들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아. 이 자식 성질 머리하고는...진정해 얌마..."
술만 먹으면 평소보다 훨씬 가격해 지는 성격. 그 사실을 아는 한 친구가 사내를 저지하고 또 다른 사내는 정신없이 그저...
"쩝 쩝 "
과자를 먹는데 온 정신을 쏟아 붓고 있다.
"아 이 거지 같은 놈. 그걸 또 주워 먹고 있냐? 하여간 이 거지 근성은 변하질 않아요."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고 있던 사내가 씩 웃으며 말한다.
"야 그럼 아깝게 버려? 이 과자 하나를 만드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 텐데. 니들 이렇게 음식을 함부로 대하면 벌 받아."
흥분을 좀처럼 잠재우지 못하던 사내가 동식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문다.
"후우~ 야 그건 그렇고 너 공무원 시험 준비는 잘 되 가냐? 이번에 떨어지면 진짜 개 쪽이다. 벌써 십 년째 치고 있잖아. 누가 보면 무슨 고시 준비 하는 줄 알겠다. 국가9급 고시 크크큭. "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과자를 주워 먹던 남자.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바뀌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야. 중요한 건 얼마의 시간이 걸리느냐가 아냐. 언제가 되던지 그 꿈을 이루기만 하면 돼. 그리고 9급이 뭐가 어때서? 직업의 귀천이 어디 있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악"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 진호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너나 최선을 다해! 할 거면 제대로 하고.. 뭐? 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마흔 먹고 9급으로 시작할래? 이제 우리 삼 십 하고도 중반으로 들어선 나이야. 괜히 되지도 않는 공부로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나랑 보험이나 시작하자니까."
그 때 인상을 찌푸리며 깡 소주를 불고 있던 옆 테이블의 남성이 테이블을 뒤집어엎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어린 노무새끼들이 더럽게 짹짹 거리네. 야, 니들 좀 저리로 꺼져라 응! 술 맛 떨어지게 에라이 술도 다 떨어지고 썅!"
중년 남자의 행동에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사내의 머리에 또 다시 분노 게이지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야...승범아 신경 쓰 지마 저 아저씨 만취야 만취... 그냥 씹어."
진호가 승범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리던 그 순간 동식의 머리로 소주 병 하나가 날아들더니 이마에 정통으로 꽂힌다.
"아아악 뭐...뭐야?"
"이 새끼 들이 진짜 너희들도 나 무시 하냐? 이 나이에 직장 잘린 것도 열 받는데 ...."
하지만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술만 먹으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승범의 주먹이 전광석화의 움직임으로 남자의 주둥이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아저씨 거참 말 많네.. 생긴 건 꼭 우리 김 부장이랑 똑같이 생겨 가지고... 원래 꼰대들은 그렇게 말이 많은가? 다시는 그 입 못 놀리게 손 좀 봐줘? 앙!"
승범은 그대로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발로 짓누르며 위협을 가했다.
"야 그만해.. 이 아저씨 취했잖아. 일 크게 만들지 말자."
"뭘 그만해 이 꼰대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나이 많답시고 까불어 치는 이런 종자들은 다시는 못 기어오르게 제대로 밟아 줘야 돼."
그 때였다. 바닥에 깔려 있던 중년의 남자가 심하게 구토를 하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흰 자위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집어 졌고, 그의 몸통은 심하게 요동쳤다. 그 모습에 당황한 승범은 술이 확 깨며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아저씨. 정신 차려 봐요....."
다급해진 진호가 남자에게 달려가 따귀를 때려 보았지만 남자의 발작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야 동식아 119에 신고해. 빨리! 이러다 이 아저씨 죽겠다..."
갑작스런 상황에 승범은 조각상이 되어 버렸고, 동식은 급하게 핸드폰 을 만지며 대로변으로 뛰어 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발작 증세를 보이던 남자의 허리가 심하게 꺾이며 활처럼 휘어진 것. 그 동작을 끝으로 남자는 모든 발작으로부터 자신을 해방 시킨 채 그 자리에 정지해 버렸다. 물론 숨 쉬는 것조차 말 이다. 요란하던 편의점 앞은 순식간에 고요함에 빠졌다. 승범 은 꿔 다맨 보릿자루 마냥 멍하니 서서 진호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다. 진호 역시 갑작스레 일어 난 해프닝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야 진호야.. 뭐야...이 아저씨... 왜 갑자기 숨을 안 쉬는 거야.. 응? 야 난 진짜 딱 한 대 밖에 안 쳤어... 그렇게 세게 친 것도 아닌데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승범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주저앉는 건 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어쩌면 살인 미수가 될지도 모르는 이 곳에 그들은 가해자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숨이 멈춘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 외에는 딱히 없어 보였다.
오늘 따라 유난히 개미 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는 편의점 골목. 어느 덧 시간은 새벽 두시를 넘어서며 깊은 밤으로 치닫는 중이다. 자리를 비운 편의점 주인조차 좀처럼 가게로 돌아 올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건 조용한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꼴?
"크어어어......."
그 때였다. 골목의 적막을 깬 건 음산한 신음소리였다. 정체불명의 소리. 숨을 멈추었던 남자로부터 터져 나온 괴성이었다. 남자는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세워 몸을 일으켰다.
"아. 아저씨 괜찮아요?"
승범이 그에게 다가서려 하자 진호가 그를 막아섰다.
"안 돼! 가지마. 이 아저씨 뭔가 이상해."
"그럼 어떡해? 저 아저씨 뒤지기라도 하면 난 어쩌라고."
중년의 남성은 입에서 거품을 뿜어대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자리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동식은 골목길을 벗어나 있었다. 대로변에 나와 119 대원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그였다. 때 마침 저 멀리서 사이렌소리를 울리며 다가오는 구급차. 하지만 그 보다 더 다급한 소리가 동식의 귓가에 전해졌다. 그 것은 분명히 편의점 앞 친구들이 내는 비명 소리였다. 그 소리에 놀란 동식은 그대로 편의점으로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한 편의점 앞. 그 곳엔 듣도 보도 못한 거구의 생명체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3미터는 족히 되 보이는 거대한 덩치. 머리숱이 별로 없는 모습에서 그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괴물로 돌변한 중년 남자.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집어 던지며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괴물. 모든 걸 집어 던지던 그의 손에 급기야 자전거 한 대가 걸려들었다.
"아!!!!! 안 돼 그것만은."
동식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괴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동식을 인지하고는 손에 들린 자전거를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동식을 향해 날아오는 자전거. 자전거 몸통에는 선명하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원 동식)
동식은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하며 날아드는 자전거를 피했지만 그 결과 자전거는 벽에 부딪히며 아 작이 나고 말았다.
"으아아악!!!! 내 자전거. 내가 어떻게 구입한 자전거 인데, 버스비며 밥값이며 아끼면서 겨우 산거라고!!!"
현재 그들이 있는 편의점은 서울 망원 동 진호의 집 근처였고, 동식이 거주하는 지역은 경기도 파주(일산) 근방이었다. 차가 끊긴 이 시점. 그리고 박살난 자전거. 동식은 집까지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현실이 동식의 화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이 대머리야! 내 자전거 변상해!"
동식은 그대로 3미터가 넘는 거한에게 달려들어 있는 힘껏 몸을 날려 발길질을 했다.
퍼억~~~
그의 발차기가 남자의 복부에 정통으로 들어가자 육중하기 짝이 없던 괴물의 몸이 허공을 날아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그 한 방에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본래의 모습으로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 본 승범 과 진호의 입은 쫙 벌어진 채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괴물의 등장도 등장이지만 그 괴물이 친구의 발차기 한방에 넉 다운 된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였다. 그들의 두 눈동자는 옷이 찢겨진 채 바닥에 널 부러진 중년 남자와 찌그러진 자전거를 보며 포효하고 있는 동식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급기야 승범이 영혼 나간 표정으로 진호를 불렀다.
"야 좀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진호 역시 여전히 믿겨지지 않는 듯한 얼굴로 동그래진 두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글쎄다. 다만 확실한 건 괴물을 쓰러뜨린 저 놈도 정상은 아니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