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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환 Oct 20. 2017

5000원에 마음의 여유를 사다

맥주 한 잔이 주는 마음의 여유를 즐겨보자

 '당신은 여유 있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과연 몇 명이나 '예'라고 대답을 할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여유는 사치라고 한다. 고등학생은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 입학을 위해 학교에서 끊임없이 공부하느라 여유가 없다. 대학교에 가면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스펙을 쌓으려고 하니 시간이 없다. 그렇게 힘들게 열심히 준비하고도 많은 탈락과 좌절감을 맛보고 나서야 간신히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경쟁이 시작이 되고 주말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월요일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 만약 3일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여유'라는 단어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보통 사람들처럼 나도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침 7시 반 등교하고 야간 자율 학습까지 하면 10시에 집에 오는 생활을 견딜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날 힘도 없었고 일어나기도 싫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계속되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이유를 몰랐다. 주변 친구들도 다 하는 공부고 좋은 대학을 가려면 하고 싶지 않은 공부도 억지로 해야 했다. 무한 루프에 갇힌 거처럼 매일 하루 반복되는 생활을 3년 동안 하고 나서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대학 수업만 가면 되고 처음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성인이 되니 당연히 술을 마실 수 있었고 그때는 술을 마시는 자체가 즐거웠다.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쓴 술을 마셔도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마시는 맥주는 항상 카스나 하이트 맥주였지만 소주보다 덜 쓰고 시원하고 탄산이 많아서 좋았다. 그 당시에는 어떤 브랜드의 맥주가 있었는지도 몰랐고 술집이나 고기를 먹으러 가면 카스나 하이트 밖에 없었다. 나에게 맥주란 소주 마시기 싫으면 마시던 술이자 소맥을 타 마시는 술이었다.


 한국에서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맥주 또한 새로웠다.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맥주를 팔고 있었다. 보통 해외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처음 마셔본 맥주에 반해서 맥주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 처음 마셔본 맥주에 반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쓰고 맛이 없었다. 당시 처음 마셨던 맥주는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Sierra Nevada Brewing Co.)의 페일 에일(Pale Ale) 이었다. 한국 맥주에 길들어 있던 나에게 시에라 네바다 맥주는 너무 쓰고 맛이 없었다. 쓴 맥주를 마시는 미국 사람들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이후 한 1년 넘게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을 마시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좋아하는 맥주 중 하나이다.

 

 미국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전공을 식품과학으로 바꿨다. 싫어했던 과학과 엔지니어 수업을 많이 들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기에 많은 과학 용어들이 생소했다. 그래서 수업을 따라가느라 바빴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같이 수업 듣는 미국 친구들도 많이 바빴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누가 봐도 초조하고 시험이 두려운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시험기간 때는 긴장을 많이 했고 어려운 수업일 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반면 미국 친구들은 바쁜 와중에도 여유가 있었다. 처음에 그들의 여유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시험기간에 운동을 하고, 시험기간에 친구들과 밥을 한 시간 이상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햇살 따스한 날이면 시험기간이 돼도 밖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풀밭에 누워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물 침대를 만들어서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나만의 여유를 찾는 방법이 있어야 했다. 아니 꼭 필요했다. 전공이 식품과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통해서 여유를 찾았다. 처음에는 커피에 관심이 많아서 코스타리카로 커피를 배우러 갔고 그러다 보니 와인에도 관심이 생겨서 이탈리아 가서 와인을 배웠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토스카나 (Tuscany)지역에서 와인을 한 달 동안 배우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여유로운 생활을 느낄 수 있었다.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면서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 미국에 돌아와서도 떠올랐다.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술에도 관심이 쏟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평상시에 많이 마시던 맥주가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쓰는 에세이가 좋았고 맥주를 마시면서 대학교 풋볼리그를 보는 것도 좋았다. 수업 끝나고 학교 주변에 있는 수제 맥주 펍에 가서 친구들과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좋았다. 맥주 한 잔이 나를 편하게 했고 맥주를 마실 때 나는 여유로웠다. 그렇게 나는 맥주를 마실 때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맥주를 마셨다.


어느 날 문득 맥주를 마시다가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종류의 맥주들이 있나 너무 궁금해졌다. 졸업 마지막 학기에 맥주 관련 학과를 찾았고 영국 노팅엄대학교 (The University of Nottingham)에 맥주 양조학 석사 (MSc Brewing Science and Practice)를 지원했다. 미국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맥주 양조학 석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년간 맥주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마음의 여유를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게 되었다.

영국 풀러스 브루어리 (Fuller's Brewery)의 런던 프라이드 (London Pride) 맥주

 사람마다 여유를 즐기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이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면 지갑에서 5000원을 꺼내 들고 근처 수제 맥주 펍이나 마트 가서 맥주 한 잔 사서 마시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비싼 수제 맥주들은 5000원이 넘지만 그래도 5000원이면 괜찮은 맥주 하나 주문할 수 있는 돈이다. 5000원으로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서 마음의 여유를 즐기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맥주를 마시다 심심하면 필자가 앞으로 포스팅하게 될 맥주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바쁜 일상에서 잠시 탈피해 여유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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