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1993 미국

by Journey of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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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많은 것을 가져간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은 없어지거나, 나의 것이 아니거나, 잊혀진다. 시간이 가져가버린 많은 것들, 그래서 잊혀진,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영화. 어제도, 오늘도 잊혀져가고 잊어가는 것들에 대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의 원제는 SLEEPLESS IN SEATTLE이 다. 사실 원제를 직역 해놓은 번역이지만, 이상하게도 낯선 느낌을 마주하게 된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마치 지금은 노래나 시에 있을 법한 느낌의 제목. 이 우리나라 제목부터 이 영화는 묘한 느낌 주었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작은 동화를 본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마치 추운날 차한잔 하며 듣는 90년대에는 그랬어 라는 옛날 이야기같은 영화. 그 기분을, 기억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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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내가 느끼는 라디오는 90년대의 그리고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2000년대의 상징같은 것이었다. 명절 때 시골에 내려가는 길엔 늘 라디오를 통해 교통정보와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과 어딘가를 갈 때, 4시에서 6시 사이에는 늘 같은 라디오 채널을 듣곤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라디오는 내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연애상담부터, 자신의 꿈을 고민하는 어른들의 힘든 사연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프로에 나만 아는 노래가 소개될 때의 그 마음까지, 라디오는 내 어린 생각을 크게 해준 삼촌이자 이모이자 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라디오가 반가웠다. 그 마음이 반가웠다. 여자 주인공이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 때의 생각을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만큼 라디오는 그 시대의 감성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들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보낸 사연, 어린아이의 순진한 사연이 방영되는 따뜻함, 그리고 장소는 다르지만 지금 우리가 동시에 이 라디오를 듣고 있다는 하나의 소속감. 다시듣기와 재방송이 일상화 되어버린 지금은 느낄 수 없는, 라디오만의 감성. 그 감성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허술함.

12살이라고 속이고 비행기를 탑승하는 8살. 라디오를 듣고 검색을 통해 사람을 찾아갈 수 있는 이상한 정보력. 자신의 아내가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며 규정을 어기면서 주인공의 부탁을 들어주는 빌딩 관리인. 영화니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사실 내가 기억하는 90년대는 그랬던 거 같다. 허술하고 허당같은 매력. 지금처럼 이건 저것이 문제고, 저건 이것이 문제고 하는 칼같고 정확한, 편리하고 합리적이지는 않지만(마치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의 극대화 된 듯한 합리성과 시스템인 것들) 그냥, 그럴수도 있지 라고 하는 조금은 허술함이 그 때의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모르겠다. 그 때의 사람들은 그랬던 거 같다. '정'이라고 표현을 해야하나? 글쎄.. 무언가 지금은 없는 그런 것들이 있있던 거 같다. 그냥 막연한 내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모든 행동이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건가? 라는 걸 고민하던 때는 아닌 것 같다. '굳이 따지지 않음'이 그 시대의 키워드였을까. 물론 지금의 합리성이 나에게는 편리함과 편안함, 떳떳함을 주지만, 조금은 여유로웠던 그 허술함이 영화속에 보여서 오히려 즐거웠다.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여자 배우가 영화의 장면을 이야기하며, '남자들은 이 감정 모를거야.' 라고 말하며 운다. 그러자 남자들은 이해못할 표정을 하고 감성적이라며 말을 한다.하지만, 다른 영화(아마 전쟁영화 인 거 같다) 이야기를 하며 탱크위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남자 배우들은 감정 이입하며 운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도 웃겼다. 마치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남과 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요즘엔 이러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민감하고 불편한 부분이지만, 남녀의 차이를 부드럽게 전해주는, 그러면서 따뜻하게 그리는 영화의 장면이 유쾌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결국 감성적이라고 놀려놓고 우는 게 포인트)


'표정'

영화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뽑아라 라고 하면 단번에 말할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애니가 샘을 만나러가서 길거리에서 서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대사는 '안녕하세요'가 전부. 하지만 이 영화 자체를 표현하기에 너무나도 정확한 장면이자 가장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나누는 인사 속에 녹아있던 의미,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미묘한 감정을 '표정'에서 모두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이 장면을 몇번이고 다시보면서 두 배우가 정말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덤. 말로 하는 것이 아닌 표정으로 보여주는 감정이 좋은 장면이었다. 마치 표정으로 말하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한 두 배우의 모습.

사실 조금은 작위적인 마무리가 눈에 거슬리지 않는 건, 이 장면에서 두 배우가 보여준 표정 때문이 아닐까. 마치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아련한 느낌의 표정. 배우가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무려 1993년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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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내가 좋아하는 단어. 변곡점. 이 영화를 보면서 변곡점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같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작은 사건 - 라디오에 전화하는 조나 - 이 가져오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역시 삶의 모든 건 변곡점의 합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영어로 치면 if, 만약 거기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면? 이런 작은 변곡점들이 합쳐진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서 결국은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변곡점들의 합이며, 그 변곡점이 만드는 변주곡이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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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잊혀진다. 잊혀지고 나면 새로운 것들이 오겠지만, 그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인사를 우리는 다 하지 못한 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인사. 이게 지금 2020년의 내가 1990년의 영화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마웠다고, 즐거웠다고. 그 시대를 어른으로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사는 전해줄 수 있는 나이인 것이 어쩌면 감사하인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고 해석하고 리뷰하고자 했다. 어색하기도 하고, 사실 다 써놓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새로운 접근으로 보기에 즐거운 리뷰쓰기였다. 모든 영화가 교훈을 주거나 아주 큰 의미를 나에게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키워드 접근을 해본 것도 영화가 아주 크게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소소하거나 거대하거나 영화는 생각을 준다. 그 생각을 씹고 소화해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시도로 글을 써보았다.


소소한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메리 아줌마 만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영화, 라디오의 따스함이 아직 살아있었던 시절의 영화. 오늘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구워보았다. 리뷰 굽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