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때만의 감성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면 /1995 일본

by Journey of J


HLGwILwVHDO87PNpWowO-Pcg7UI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과거와 추억.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단순히 옛날 영화여서가 아니라, 애니메이션만이 줄 수 있는 표현의 삭제와 추가 그리고 그로 인한 생략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더운날 헉헉거리면서 뛰어올라가는 주인공의 보여지지 않는 땀방울과 그 찝찝함, 열기. 실사 영화에서는 생략 불가능한 지점을 생각하며 우리 기억(추억)도 늘 그렇게 작동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를 맞아도, 땀이 나도, 다시 떠올리면 그때의 불편함을 모두 잊게 하는 그 추억 상자를 열어보는 느낌의 영화.


물론 1990년대라는 시대 배경과 지금은 사라져버린 문화들이 그 생각을 더욱 강화시킨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나에게도 추억이 되어버린, "안녕하세요, 저 ○○이 친구 ☆☆인데요."를 말할 수 있었던 집전화부터, 늦게 들어와도 걱정하지 않는 부모님들, 도시락을 전달을 위해 아버지를 찾을 때, "어디계세요?"라고 전화하지 않고 직접 도서관을 찾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나날들을 보는 듯한 느낌에 과거를 떠올렸다. 어쩌면 기술의 발달이 미흡했던 것이 그런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배경의 수채화의 느낌, 움직이는 대상과 움직이지 않는 대상의 작화 구성의 차이가 요즘과는 다른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표현하려는 영화 감독의 의도도 아주 잘 보였다. 또렷하게 들리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자기 위해 몇 번을 더듬어야 끌 수 있는 전등, 밤에 일어나면 꼭 무엇인가 발에 밟히는 느낌,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현재가 아닌 추억을 떠올리는 느낌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억 속에서도 어떤 감각과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으니까. 오늘의 관점에서 과거의 어떤 날을 볼 때, 우리의 기억은 편향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니까.


하지만 재밌게도 주인공들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니겠지만, 2020년의 옛날 영화를 보는 나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들이 정작 미래를 이야기 한다는 점은 낯설게 다가왔다. 미래의 나 미래의 너, 미래의 너에게 뒤쳐지지 않게 노력하는 나. 그 노력이 영화 전반에 내용에 녹아들어있다.(물론 둔한 주인공만 몰랐던 반전이 있었지만..) 결국 그 결실을 맺는 '나랑 결혼하자'라는 대사는 미래에 대한 가장 직설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90년대의 감성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보기엔 조금은 어색한 조금은 촌스러운, 그래서 조금은 그리운 그런 감성. 미래를 말하는 과거의 주인공이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미래, 그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는 현재로 시선이 돌아왔다. 미래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미래의 나의 시선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겠지만, 어쩌면 주인공처럼 지금도 방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영화 전반을 연주하는 '컨트리 로드'가 그 이유일까.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너는 어떤 모습일지 묻는 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물론 난 여기가 고향이지만). 지금의 나. 지금의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게 이 영화에 마지막 앤딩크레딧을 보며 들었던 조금은 쌉싸름한 감정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8aeb37ad3821387fcfe8bfabea137db4.gif


사람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편향적이다.




어떤 기억은 나쁜 기억들이 좋은 기억을 덮어버리고, 어떤 기억은 좋은 기억들만 추억이 되어 내 앨범 속 그날을 장식하고 있다. 과거는 늘 그렇게 기억이 된다. 이 영화처럼. 오늘의 나의 하루도 그렇게 기억이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더위나, 기댈 곳이 없이 반 쯤 누워 본 터라 느꼈던 목의 통증은 기억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컨트리 로드로 끊임없이 반복했던 그 대사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까. 간절하게 꿈을 찾던 주인공들을 보며 느꼈던 쌉싸름하고 씁쓸한 감정은 남지 않을까. 2030년의 미래에서 오늘을 봤을 때 어떻게 남을지 반쯤 기대, 반쯤은 걱정하며 리뷰를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