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투 비 블루 / 2015, 미국
자신을 마약으로부터 꺼내 준 모든 것이 무너져 아무 것도 없었을 때의 나를 믿어준 사람을 결국은 다시 실망시키는 이야기.
뉴스 기사처럼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줄로 뽑아내면, 결국 저런 무미건조한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
며칠 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고전의 가장 큰 덕목은 우리의 도덕선을 건드리는 거야.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사람 또는 법적으로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 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 지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고전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야."(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횡설수설 한 거 같기도 하다.)
결국은 고전은 실패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그 실패자의 이야기로서 '본 투 비 블루'는 고전 작품과 같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애를 담는 추모 영화보다 더 크다.
영화를 이야기 하기 전에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재즈를 잘 모른다. 20살 때 재즈에 관한 일을 잠시 하긴 했지만, 재즈라기보다는 기획이었고 그 당시에도 나는 재즈를 잘 몰랐다. 그냥 보컬이 없는 트리오부터 시작해서 악기 연주를 하는 것 정도로만 알았다.
다만 내가 아는 조금의 상식을 이야기하자면(그 당시 재즈 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걸 옮기자면), 재즈는 자신이 주인공이 될 파트에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16마디 또는 24마디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연주 파트가 있고 그 파트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 나만이 그 무대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제 영화로 가보자. 영화의 시작은 영화 속 주인공이자 실제 재즈 레전드 중 하나인 쳇 베이커는 모든 걸 잃은 상태를 비추며 출발한다. 과거 뛰어난 연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마약으로 인하여 타락한 약쟁이 예술가. 거기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모든 걸 잃은 그에게는 단 한 명의 여자가 남아있다. 트럼펫 연주자로서는 필수적인 앞니 두 개가 없는 그는 그녀에게 의지하고 그녀는 그가 살아가고 재기할 힘을 준다. 그 힘으로 그는 재기에 성공하고 다시 한 번 인생에서 가장 큰 무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는 결국 큰 무대에 오르기 전 다시 실수를 한다. 다시 마약을 하고 무대에 오르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 시키며 영화가 끝이 난다.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별개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생각보다 굉장히 친절한 영화다. 그 당시에 재즈라는 음악 장르,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아주 쉽게 관객에게 전해준다. 백인이 하는 흑인 음악에 대한 경계, 마약과 여자 술 없이는 설명되지 않던 예술가들의 삶.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또한 음악과 색감을 아주 예쁘게 사용한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장소들의 색감, 쳇 베이커가 사는 차량, 논, 밭, 중간 중간 장면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는 재즈. 와인 한 잔 하면서 보면 정말 좋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악과 배경을 정갈하게 내놓은 느낌이었다. 색감으로만 봐도 좋을 정도의 아름다운 영화였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된다. 도대체 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 그 마약에 다시 손을 뻗게 되었을까.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다시 하게 되었을까? 그는 정말 바보인가? 구제 불능인가? 아니면 결국 약쟁이는 약쟁이인 것인가?
우리의 대답에 앞서 감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이미 영화에 잘 넣어두었다. 영화를 잘 들여다보면, 베이커는 마약을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는다. 제인이 있었기에, 그 관계에 자신의 존재를 매어두고, 중독되어 있었기에 그는 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재기를 위한 스튜디오 청음회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의 중독, 나아가 나라는 사람의 의미가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제인 역시 자신의 삶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그에게는 자신의 삶의 이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을 것이다.) 결국 혼자 남겨졌을 때 그는 다시 손에 마약을 쥔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매어있을 곳이 없기에, 그는 날아가버리는 쪽을 택한다.
그는 구제 불능이거나, 약쟁이라서 결국 약을 한 것이 아니다. 바보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유약했기 때문에 결국 다시 마약을 했던 것이다. 사랑이 필요했으니까. 그런 그를 유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는 없다. 그는 그냥 조금 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유약한 예술가, 성공한 실패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전체 이야기를 보았기에, 그를 이해한다(적어도 나는 이해한다).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동정할 수 있다. 또한 유약한 그를 보며 우리를 돌아볼 수 있다. 유약한 그 모습이 나에게도 있기에. 그리고 이 부분이 고전 작품과 닿아있다.
언뜻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동정과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실패자가 되는 것이 그 본인만의 잘못 된 것이 아닌 단지 운에 따르는 것이라는, 실패자에 대한 따뜻한 눈빛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좋은 문학 작품처럼, 이 영화는 쳇 베이커에 대하여 일말의 따뜻한 시선을 줄 수 있도록 한다.
실패자. 어떻게 본다면 크게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 고전과도 같은 이 영화의 리뷰를 이렇게 마친다.
P.S 당신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이해 받을 수 있겠는가?